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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

 01. Friday 3:13_썸머

어느새 29, 흔히들 아홉 수라 칭하는 나이가 됐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학창 시절,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들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서 나도 그 나이쯤 되면 기승전결이 뚜렷한 나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기승전결의 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까지는 갔을 거라고 예상하며 미래의 나에게 한껏 멋있는 프레임을 씌우고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또한 그 스토리의 끝은 당연히 해피엔딩일 거라고 순수하게 자만하기도 했었다.
 상상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지금,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 나에게 너의 스토리가 어디까지 왔냐고 물어본다면 우선은 글쎄….라고 말을 띄운 후 긴 고민 끝에 승이라고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도 확신의 말투는 아니다.
 꿈을 좇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졸업한 지 4년이 흘렀다. 졸업 후 2년은 전공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러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제2의 플랜, 차선의 선택이었던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한 지도 2년이 흘렀다. 입시 때부터 지금까지 나름의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초반의 내 꿈만 바라보며 한 길로만 달려온 시간과 그 후에 현실에 순응해 주변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좀 더 내 삶을 위해서 살아왔던 시간까지 19살부터 29,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웃고 울며 나의 성장 스토리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29 나 혼자 산다.

독립이라는 단어가 주는 책임감이 있다. 모든 것을 내가 꾸려나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
 그것들이 때로는 나를 압박하기도 하지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방공호가 생긴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방공호는  모든 압박감을 이길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현실은 때론 잔인하고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무게감을 준다. 가끔은 이겨낼 힘이 없을 , 가끔은 한없이 약한 모습 그대로 있고 싶을 때가 바로 방공호가 필요한 순간이다.
때론 외롭다 느끼며, 때론 모든   귀찮다 느끼며 혼자만의 고독함을 즐기는 .
 침묵 속에 있는  순간이 나쁘지 않다 느껴지는 순간.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군중 속에서 침묵하게 되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침묵 속의 고독이  따뜻하다고 느끼게  것은 젊음의 무모함일까, 어른의 슬픈 성숙함일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표들 사이에서 애써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그저 나로 있을  있는 곳이 있다는  때론  어떤 위로의 말보다   위로가 된다.

 여가 시간에 혼자 집에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소소하게 혼자 술을 마시고 때론 취하기도 하며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온전한 나로 있을  있는 환경, 꾸미지 않은  못난 모습까지도  내보일  있는 그런 환경을 가질  있는  어른이기에 가능한 특권일 수도 있다.


 

29 술꾼 도시 여자

나는 애주가이다. 미성년자일 땐 애주가란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면을 봤었다면 이젠 술이 주는 즐거움을 안다. 휴일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한잔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아낀다.
 술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순간의 즐거움만을 생각하게 되는 집중력, 그래서 평소보다 이 순간이 두 배는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환상 같은 즐거움 때문이다.  
 더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점은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술을 찾기도 하며 술의 부작용을 이용해 잊어보려 하고 극복해 보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지 아주 짧디 짧은 그 순간, 길어야 몇 시간일 뿐이라도 말이다.
 술은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순간의 즐거움? 순간의 용기? 순간의 망각?
 순간이란 것 때문에 우리는 그 후에 딸려오는 무수한 후회 속에서도 놓질 못하고 다시 찾게 되는 것이라면 술이 나쁜 것이라고만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 힘을 빌려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좀 덜 힘들 수 있다면 말이다.
 철이 들었다는(자의이든 타의이든) 우리들은 아주 작은 진심조차 꺼내기 어려워하고 미래를 위해 스스로 철이 들었다는 세뇌를 하며 틀에 가두고 현재를 채찍질하여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다신 없을 지금을 돌아보지 못한다.
 반면 어린아이들은 해맑은 표정과 마음으로 순수한 솔직함을 드러내고,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은 자신의 속마음과 욕구를 드러내며 그 과정이 반항심으로 변하더라도 지금 당장의 하고 싶은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현재를 살아간다.
 
 우리도 가끔은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해도 괜찮다. 술에 취해서 실수 좀 하면 어떤가?
 너무 지칠 때 짧은 일탈의 달콤함은 오히려 충전재가 될 수도 있다.
 이 말마저 그저 술을 마시기 위한 변명으로 본다고 해도 또 어떠한가?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버리자! 술과 약간의 취기는 나를 즐겁게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것을!
 

29 어른 아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현실과 꿈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하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시기는 언제일까? 29살인 나는 아직 꿈을 포기했다고 말하기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하는 일이 혹은 할 일이 별로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직 나는 강단이 없는 것일까. 새해는 매년 오고 어른이 돼야 하는 시기도 점점 다가오는데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고 여전히 어렵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면 이미 세상에 나아갈 준비가 끝난 상태로 출발선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미 출발했거나) 아직 선택조차 하지 못한 내가 기준 미달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 찾아오는 무력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어른이 되어버린 듯 순수하게 내 욕망에만 솔직할 수 없고 아이가 되어버린 듯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고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인 듯 낯선 어른 아이, 지금의 29살 아홉 수인 내가 아닐까?
 무수한 물음들 속에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앞으로 하나씩 나만의 답을 찾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고 그 여러 길에서 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져보려 한다.
 
 어쩌면 아홉 수란 건 이러한 혼란 속에서 겪는 마지막 숫자이면서 또 다른 처음을 앞두고 있기에 모든 혼란의 폭풍을 잘 견뎌내자는 응원의 단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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