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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이 되는 일

01. Friday 3:13 _수수

시간은 이상하다 싶을 만큼 빠르게 흘러 기어코 12월 31일을 지나 1월 1일이 되고야 만다. 올해도 그랬다. 이제는 평안하게 흘러갈 법도 한데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내 몸과 마음이 요동치는 한 해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내고 이제 나는 1월 1일 29살이 되었다.


28살의 나, 돌이켜보면 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흔들렸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년간 추가 공부를 했던   오랜 시간 돈을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어떤 이유로 우연히 일을 시작했고 그렇게  년이 흘렀다. 삼년차에 접어든 나의 , 좋은 사람들 그리고  도전 의식을 일깨우는 프로젝트들. 매년 조금씩 인상되는 연봉까지.  년간 갈고닦은  전공과 완전히 맞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있겠다고 생각하게  해였다. 여느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과로에 시달렸고, 과로하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책망하기도 했고, 업무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성이 흔들렸다. 비슷한 하루를 보내며  안에서의 스펙타클함에 몰두하여 잠시 유보해뒀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다시 그려보며 무기력함 속에서 헤엄치지 않으려고 억지로 열정을 불태웠던  같다.


28살의 나는 많이 아팠다.

두 번의 난청과 한 번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일 년, 열두 달 중 족히 세 달은 한 움큼씩 약을 먹으며 보냈다. 낯선 고통이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막연한 말이 더 힘들게 했다. 현대인이 스트레스 없이 살기가 쉬운가, 이쯤이면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난청이 재발이 잦다곤 하지만 곧이어 재발했을 때 더 황당했다. 왜? 난 잘 살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말이다. 그런데 계속 몸은 아니라고 말한다. 분명 괜찮은데. 이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 특이한 상황이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구성되어있는데 이젠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아주 조심스러워진다. 순식간에 나와 스친 누군가에게 전염되고, 나와 스친 누군가에게 전염시킨다. 난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결코 혼자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주 최소 단위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세상 속에서 나도 그렇게 물들어 개인적이게, 이기적이게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혼자만 혹은 아주 최소의 사람들과만 함께하다 보니 나이가 들어, 내 마음이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작아지게 되는 것 같은 한 해였다.


28살도 도전의 연속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회사에서 내 전공과 아주 비슷한, 극을 직접 쓰고 만드는, 공연 기획이자 연출을 하게 되었다. 전공인데 왜 도전이냐 물을 수 있다. 나에게 전공은 공부하면 할수록 어려워져 잠깐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삼년간 그리워하면서도 피했던, 연출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음악 무용 영상 그 어떤 것에서도 전문가가 아니지만 선택하고 조율하여 내가 그리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스스로 의심이 들기에 확신을 갖기가 어렵지만 이를 감춰야하고 그 안에서 나의 실력이 들통날까 두려웠다.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결국 만들어 내는 것은 내가 아니기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무력감도 든다. 이번 작업에서도 그랬다. 나보다 한참은 대선배인 사람들과의 작업에서 스스로 끝없이 모자란 것 같았다. 이미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이다. 그래도 결국 공연은 올라가고, 모두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나름대로 만족할만큼 좋은 공연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얼렁뚱땅 시작하게 된 도전을 운 좋게도 잘 마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예기치 않은 다음을 기대하게 됐다.


아직 내게는 기댈 구석이 있었다.

대학원을 수료한 채로 졸업하지 못하고 4년이 흘렀다. 드디어 올해 끝내보자고 오래간 미뤄뒀던 논문을 시작했다. 퇴근 후 4~5시간 동안 논문을 쓰고 잠을 자고 출근하는 생활을 몇 달간 반복했고, 결국 최종 심사를 지나 드디어 졸업을 했다. 논문은 마음에 남아있던 큰 짐이었다. 그런데 짐이 덜어짐과 동시에 불현듯 또 두려움이 생겼다. 이 학위는 내게 어떤 의미가 되고 어떤 역할을 할까 나는 공부를 더 해야 할까, 일을 해야 할까, 난 진짜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물밀 듯 밀려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고 나니 미뤄둔 졸업은 내게 기댈 구석이었나 싶었다. 막상 졸업이라 하니 대학을 막 졸업한 친구들처럼 꽤 머리가 복잡하다. 하나를 끝내고 나니 또 생겨나는 너무 많은 선택지 속에 어떤 선택이 최선일까 고민된다. 고민 중 계획한다 한들 그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선택하는 게 참 어려워진다.


사실 난 항상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도 어른스러운 척을 했던 것 같다. 척이 몸에 익어 진짜 내가 되어갈 즈음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난 언제 진짜 어른이 될까. 이십 대가 되고 나서도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게 싫지 않았다. 분명 작년보다는 많은 경험을 했고, 더욱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난해를 지나온 지금은 글쎄. 내가 생각한 어른이 아닌 자신도 못 돌보고 주변도 못 돌보고 평소라면 소리 냈을 수많은 일들에 침묵하고 점차 무뎌지는 그런 못난 어른이 되고 있나 싶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나이가 훨씬 더 돼도 아마 치열한 고민들과 문제들과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럼 그냥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되 나를 돌보고 남에게 관심을 갖고 나누면서 살고 싶다. 쉬운 말이지만 아직은 어렵다.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 성장에만 몰두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기, 내가 가진 것을 나누기. 

스물아홉에는 또다시 어른인 척 흉내 내어 조금 더 어른처럼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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