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외출 계획이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 지하층으로 갑니다. 도착하여 스크린도어가 열리는데, 바로 앞에 옛사랑이 보인 듯하여 따라갑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그녀는 옛사랑이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정말 그 사람이었다면 육십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나는 같은 시간에 그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습니다. 혹시나 내 첫사랑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문이 열리면 옛사랑이 그립다. 왠지 그랬다. 오늘도 출근길로 발을 옮기고 있다. 플랫폼은 언제 낮처럼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내게 언젠가부터 이 지하철 일대를 서성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풀어헤쳐진 머리칼을 다듬는 것도 지하철로 진입하기 전에 마땅히 하는 일이 되었다. 오늘도 사람이 많다.
"오늘 만날 수 있을까?"
그랬다. 그러니까 반달 전쯤 일이었다. 나는 그날도 북새통이 된 지하철 맨 앞 플랫폼에 서 있었다. 만차가 되어 어느 구석도 ㄸ뚫을 수 없었던 전차를 보내고 난 터였다. 출근시간은 촉박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전차 하나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귀엣말로 당부하듯 들려왔다. 이윽고 기다리던 전차가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스크린도어를 강제로 알고 싶을 만큼 다급했다. 문이 열렸다. 마치 모세가 열어젖힌 바닷길처럼 기적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낯익은 향기가 코끝을 자극시켰다.
중년의 동화,
아마 삼십 년 이상은 흘러감직한 이야기였다. 그녀에게서는 늘 오늘처럼 아카시아 향이 났다. 내 옆에서 그 비밀스러운 입을 열 때도 나는 그 향에 취해 있었다.
문득 값비싼 향수에 젖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전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그렇게 하차하는 사람들과 거진 몸이 부딪히며 오를 때였다. 그녀다. 분명 그녀였다. 오뚝하지는 않지만 귀엽게 생긴 콧날은 그녀가 소유한 유일한 매력이었다. 그녀의 깊은 눈망울도 하나도 변치 않았다. 순간 그녀를 잡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뻗친 팔은 몰려드는 인파와 함께 전차 안에 구겨져 넣어졌다. 차창밖에 그녀가 그 투피스의 아름다운 치마를 잡으며 계단을 오르는 게 보였다.
"분명 영인이다."
내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때부터 나는 출근길을 서두르는 게 일상이었다; 지하철 1-1 플랫폼은 이제 내 몫이었다. 언젠가 그 아카시향이 느껴진다면 그녀를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었는데 그 향기와 그녀는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일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리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