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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와르 Mar 22. 2024

두통이 온다

숲 먹는 병아리


두통,


아침부터 두통이 와서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TV를 시청하느라 밤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두통이 와서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오늘 약속을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아하게 차려입고 한 듯 안 한 듯 화장도 하고 오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통약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약속했던 종로3가의 카페행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무리인 거 같아서 부랴부랴 핸드폰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미안해서…….”

투덜거리는 친구의 음성을 핸드폰의 차디찬 꺼짐 버튼으로 눌러 버렸어여 했습니다.  

"결국 또…."

사실 약속을 어긴 게 이번 뿐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좀 감성적입니다. 어제도 TV를 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선지 알 수 없는 고통이 마치 혈관을 타고 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날 하루는 종일 드러눕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했습니다. 어제 TV에서는 오래전 만주를 누비던 한 우국지사의 유골을 모시게 되었다는 벅찬 뉴스를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감격스러웠던지 녹화방송으로도 몇 번을 거듭해서 보았습니다. 늘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한 줄 요약글 정도의 분량으로 소개되었던 선생을 생각해보면 가히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전에 만주 호랑이라 불렸던 선생님은 신출귀몰의 허영된 묘사보다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었습니다. 선생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런 크나큰 공로가 있었음에도 모든 공은 부하에 돌렸다는 것입니다. 요즘 일컫는 고위 위정자들의 수많은 탐욕은 그에게 있어 부질없은 것이었습니다. 


만주 호랑이의 외로운 죽음


그가 존재했다는 건 정말 충격적인 역사적 시나리오였습니다.

선생이 역사적 순간에 등장한 것은 우리에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선생은 수많은 광복군을 이끌고 만주와 연해주를 누비던 다녔습니다. 무수한 일제의 침략군들이 쓰러져 갔습니다.

그런 선생이 소련에 의해 카자흐의 거친 들판으로 쫓겨 갔습니다. 그의 가족은 이미 일제의 총칼 아래 모두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은 홀로 오직 조국 광복의 꿈만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밤새 TV 앞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 장면을 청취했던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감동에 젖은 나의 눈물은 흡사 지금에서야 광복을 맞은 듯 방바닥을 철철 적셔 갔습니다. 그 때문에 두통이 일어난 걸까요?

다 큰 아들 녀석이 흥분된 얼굴로 내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요?"

"뭐가?"

"장군을 공산당이라고 하던데요?"

"그게 뭐 어때서?"

아들이 내 대답이 예상치 못한 터였던지 한동안 입을 다물었습니다. 사실 녀석이 어떤 의도로 내게 물었는지는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더욱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마치 내가 큰 잘못이라도 했다는 투로 격앙된 어조를 말을 이은 겁니다.

"그게 말이 되냐고요?"

"음 그럴 수 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께선 당신 때문에 사람들이 적이 돼서 싸우는 걸 원치 않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심한 두통에 결국 또 드러 누웠습니다. 열이 37도까지 오르고 입 안이 새하얗게 말라버렸습니다.

"왜 사람들은 역사에 손을 대는 걸까?"

늘 정권이 바뀌면 역사책의 내용도 바뀌어야 하는 게 마땅한 일인가 봅니다. 

시련일 테지요.

"괜찮을 거야. 어차피 선생님은 대우를 받으려고 독립운동을 하신 건 아니니까."

그러나 아들에게 그 말을 해놓고 더 극심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쩌면 선생의 유해를 다시 카자흐로 모셔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도 편해지실까?”

“그럼 내 두통도 사라질 수 있을까?”

도통 대신 마음이 참 무거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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