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면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세상은 지금 그 실험 중이다.
유튜브 화면 속, SNS 댓글 속, 그리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는 이들의 입 속에서.
욕이 늘고, 고소가 넘치고, 비난이 콘텐츠가 되었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틀린 건 바로 저 사람이다.”
그리고 또 말한다.
“나는 정의다.
그를 몰아내야 정의가 선다.”
그렇게 한 명이 무너지면,
또 한 명이 일어난다.
그리고 또 다음 사람을 밀어내기 위해 욕의 칼을 들이민다.
이것이 정당한 정치일까?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끌어모으고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공격은 쉽다. 설득은 어렵다.
누군가의 잘못을 부각하는 데 필요한 건 자극적인 언어 한 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내 진심을 보여주는 데는, 수많은 날들이 필요하다.
정치는 이제 말싸움의 무대가 되었다.
실력보다 목소리 크기가 중요해졌고, 진심보다 클릭 수가 앞선다.
심지어 악의적인 조작도 “정치적 전략”이라는 이름 아래 용인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어.”
그 말이 슬프게도 현실처럼 들리는 세상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런 건 아니다.
다른 길도 있다.
브라질의 룰라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는 읽고 쓰는 것보다 사람의 손을 잡는 일을 먼저 배웠다.
그는 누구를 비난하기보단, 자신이 보고 겪은 고통을 이야기했다.
그의 연설은 투박했지만, 진심이었다.
그는 비난으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눈빛을 대변함으로써 대통령이 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를 가둔 정권을 비난하는 대신, 그는 그들과의 화해를 선택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옳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함께 가자.”
그가 보여준 대통령의 얼굴은, 적을 무너뜨리는 얼굴이 아니라, 적과 함께 살아가는 얼굴이었다.
한국의 정치인 노무현도 그랬다.
그는 말이 어눌했고, 글도 투박했다.
하지만 그는 늘 본인을 비난한 사람들과도 눈을 맞췄다.
그리고 싸우는 대신, 설득하려 했다.
때로는 실패했고, 때로는 상처받았다.
그러나 그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었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욕하지 않으면,
비난하지 않으면,
정권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정치는 본래 힘의 싸움이다.
욕은 그 힘을 빠르게 얻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욕으로 얻은 권력은, 더 큰 욕으로 무너진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만들어낸 분노의 불길 속에,
스스로 불타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정말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당신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돌을 던질 것인가,
손을 내밀 것인가?
비난하는 사람은 많지만,
감싸주는 사람은 적다.
고소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화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다.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를 욕했느냐보다,
누가 나를 기억해 줬느냐가 더 오래 남는다.
돌은 언젠가 땅에 떨어지지만,
손은 누군가를 끌어올린다.
그 손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대통령을 고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욕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건 더 어려운 길이지만,
그 길 끝엔 진짜 지도자가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