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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귀신은 아직 남아 있다

귀신탐정 권두칠

귀신은 아직 남아 있다. 귀신은 아직 남아 있다

서울의료센터 병원장실, 다음 날.
병원은 긴급 감사와 외부 조사를 받게 되었고,
‘병실 4번’은 공식 문서로 다시 복구되었다.

하지만 권두칠은 알고 있었다.
문서를 되돌리는 것만으론, 이 아이들이 떠날 수 없다는 걸.

그가 찾아간 곳은 병원 지하실.
처음 이하연의 발자국이 찍혀 있던 그 복도였다.

벽엔 아직도 크레파스로 그려진
아이들의 손바닥, 이름, 짧은 말들이 남아 있었다.

“아빠 사랑해요.”
“나는 노란색이 좋아요.”
“나 기억해 줄 거죠?”

그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주머니에서 작은 붓과 흰 물감을 꺼냈다.

벽 한가운데, 권두칠이 천천히 글자를 써 내려갔다.

“여기에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 순간, 복도 끝에 하연이 나타났다.
이번엔 눈이 있었다.
하연은 웃고 있었다.

그녀 곁엔 유나, 그리고 병실 4번에 함께 있던 아이들도 서 있었다.

“이제, 아저씨가 우리 대신 말해줄 수 있죠?”

권두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는 귀신이 아니야.
그냥… 너무 오래 기다린 존재였을 뿐이지.”

하연은 마지막으로 병실 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긴 마지막 글자.

“고마워요.”

그와 동시에 복도 전체에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빛이 없는 지하에, 창문도 없었지만,
무언가 환하게 비추는 듯한 따뜻함이 퍼졌다.

아이들은 하나둘,
빛 속으로 사라졌다.

눈물도, 고통도 없었다.
단지 웃으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권두칠은 벽에 손을 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너희를 잊지 않을게.
그리고… 나도 언젠간
그 벽을 지나갈 날이 오겠지.”

며칠이 지났다.
서울의료센터는 개보수를 시작했고,
병실 4번은 공식적으로 **“기억 회복실”**로 명명되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병원 벽면에 새겨졌고,
이하연의 사진도 병원 복도에 작게 걸렸다.

세상은 조용히 ‘정리된 사건’으로 말하고 있었다.

권두칠은 작업실 한쪽 벽에
사진 하나를 붙였다.
노란색 크레파스로 그려진 손바닥과
“기억해 줘서 고마워요”라는 글씨가 함께 찍힌 그 사진.

그는 조용히 묻듯 말했다.

“이제… 다 끝난 걸까?”


그때, 창문 밖에서
낯익은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문 앞.
박형섭.
한때 경찰이었고,
귀신처럼 다시 나타났던 그 사내.

하지만 이번엔…
어딘가 달랐다.

회색 양복,
너무 말끔한 얼굴.
그리고… 눈동자가 없었다.

“두칠이 형…
여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요?”

권두칠은 말없이 손전등을 집어 들었다.
박형섭은 조용히 웃었다.

“기억은 치웠지.
근데 마음속엔 아직 **‘두려움’**이 남았잖아.
그게 진짜 귀신 아니야?”

그 순간, 벽시계가 ‘딱’ 하고 멈췄다.
작업실 안에 이전 사건들과는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

손전등의 불빛이 어두워지고,
천장 위엔 누군가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

“귀신이란 말이지…”
“결국, 사람이 만든 거더라고.”


권두칠은 창문을 열었다.
밤바람이 차갑게 흘러들었다.

멀리, 건물 옥상 난간에
작은 실루엣 하나가 서 있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
희미한 병원복.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이전 사건에 등장하지 않았던 아이.

“또 다른 기억이… 아직 기다리고 있는 거군.”

그는 코트를 여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이번에도
내가 귀신을 찾아야지.”

창밖엔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을 걷는 한 남자의 그림자.

귀신탐정 권두칠.
그는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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