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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2학년 마지막 수업

귀신탐정 권두칠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폐교 2층, 2학년 2반 교실. 권두칠은 조용히 교실 문을 열었다.

탁자 위엔 칠판지우개 하나와 종이학 몇 개.
교실 안은 조용했지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그날 적힌 글씨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이현 – 숙제 X – 벌칙 수업”
“혼자 남기. 끝나면 돌아가도 됨.”

그 순간,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툭. 툭. 툭.

그리고 교실 문이 끼익 열렸다.

들어온 건,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 교사.

하지만 얼굴은… 눈동자가 없고, 입술만 미세하게 떨리며 중얼거렸다.

“교실은 질서가 생명이야… 지각한 아이는… 따로 남겨야 해…”

두칠은 손전등을 들었지만, 그녀는 빛에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빛을 무시하고 칠판 쪽으로 다가갔다.

“정이현… 벌칙 시간 아직 안 끝났지.”

그때, 책상 아래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전 숙제 했어요… 이제… 가도 돼요?”

두칠은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숙였다.

책상 밑, 희미한 실루엣.

정이현.

그녀는 교복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자세로 있었다.

“이현아, 넌 잘못한 게 없어. 나갈 시간이야.”

“…근데 선생님이 아직 안 끝났대요…”

그 순간, 여자 교사가 칠판을 ‘쓱’ 긋고는 두칠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끝나지 않았어. 한 명 남았어…”

두칠은 외쳤다.

“아니, 너도 그만둬야 해. 아이들을 벌한 게 아니라… 네가 외면받고 있던 걸, 아이들한테 풀었던 거야.”

교사는 흔들렸다.
그리고, 무너지듯 허공에 녹아내렸다.

칠판 글씨도 사라졌고, 책상 밑의 이현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수업 끝났어요?”

“그래. 이제 집에 가도 돼.”

복도 창문 너머로, 햇빛 한 줄기가 비쳤다.
분명 폐교인데도, 오랜만에 교실 안에 빛이 들어왔다.

이현은 천천히 일어나 교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문 앞에 서서 돌아봤다.

“나 이제, 기억될 수 있죠?”

두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혼자 남겨진 게 아니라 우리가 늦게 온 거였어.”


권두칠은 조용히 학교 교무실에 들어섰다.
모든 전등은 꺼져 있었는데, 단 하나, 출석부 보관 캐비닛 위의 전등만이 노랗게 켜져 있었다.

책상 서랍을 열자, 2학년 2반의 출석부가 놓여 있었다.
손때 묻은 검은 표지, 그리고 구석엔 묘하게 덧붙인 스티커가 하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넘기기 시작했다.

출석번호 1번, 2번… 정이현은 18번. 하지만 페이지 마지막에 뭔가 이상한 여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여백에 연필로 적힌 이름. 희미하게 지워져 있었지만, 분명 보였다.

19번 – 권가을.

두칠은 순간 손을 멈췄다.
권가을. 그 이름은…

그의 손녀, 두 해 전 여름에 실종된 아이였다.

“가을이가 왜 여기에…?”

그는 곧바로 학생기록카드함을 뒤졌다.
2학년 2반, 권가을.
실제로 존재했던 기록. 사진도, 주소도, 학부모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재학 기간이 ‘기록되지 않음’으로 되어 있었다.

“학생은 등록되었으나, 출석기록 없음. 사유: 전산 오류 또는 누락 가능성.”

“말도 안 돼…”

그는 그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었다.
텅 빈 학교에서 울릴 리 없는 종소리.

곧이어, 스피커에서 튀는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학년 2반 권가을 학생, 출석 확인 바랍니다.”

“그만! 가을인 여기 없잖아!!”

두칠은 소리쳤다.

그 순간, 스피커 너머로 목소리가 바뀌었다.

낯선,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

“권두칠 씨, 아이는… 원래 있었던 거예요. 당신이 기억에서 지운 거지.”

순간, 교무실의 전등이 모두 꺼졌고, 단 하나만 남은 전등 아래,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검은 제복, 회색 얼굴. 그리고 손에 들린 붉은 잉크가 번진 출석부.

“기억이 흐릿한가요? 사실… 그날도 수업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당신도… 거기 있었잖아요?”

두칠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다시 출석부를 집어 들고, 19번 이름 옆의 메모를 읽었다.

“지도교사: 권두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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