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국물과 AI 저작권’의 연결고리

브런치로 그리는 저작권의 논쟁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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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라면 체인점 A는 자사에서 수년간 연구해 만든 비밀 국물 레시피가 전직 직원에 의해 경쟁 업체로 넘어갔다고 주장한다. 그 국물 맛이 너무 비슷하다는 소문이 퍼졌고, 라면 블로거들조차 “체인점 A와 맛이 똑같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된다.

A 측은 “우리 국물 레시피는 창작물이다”라고 하며 저작권법으로 소송한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요리법은 아이디어에 가깝고, 표현이 명확히 고정된 창작물이 아니라서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한다. 즉, 국물 맛이 같다고 해도 저작권으로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그림이나 음악, 소설처럼 구체적으로 표현된 ‘창작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자, A 측은 전략을 바꿔 부정경쟁방지법(영업비밀 침해)을 근거로 다시 소송을 건다.

이때는 국물 제조법이 공개된 적이 없고 해당 직원이 비밀로 유지된 조리법을 외워서 사용했다는 점을 ‘고의적 침해’로 인정받아 일부 손해배상을 받는다.

결국, 라면 국물 조리법은 저작권으로는 보호될 수 없으나, 영업비밀로 잘 관리한 경우에는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글로벌 시대의 한복판에서, 라면 한 그릇이 뜻밖의 저작권 논쟁을 일으켰다.
마지막 법원의 선고를 통해 결국 표현은 보호받지 못했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의 비밀성이 법적 권리를 인정받았던 바 있다.

이쯤 되면, 묘하게 익숙한 풍경이 떠오른다. 바로 AI가 만든 그림과 글에 대한 논쟁이다.

오늘날 AI는 사람보다 빠르고, 넓고, 정교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문장 하나는 시인 같고, 붓 터치는 화가의 기술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그림을 그린 ‘손’에 마음이 없다는 점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사람들의 창작 의도를 기준으로 저작물을 판단한다.

감정 없는 기계가 만든 결과물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 기계를 만든 사람조차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는 회색지대라는 거다.

라면과 AI는 전혀 다른 존재 같지만, 이 둘은 법 앞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결과물이 아닌, 창작의 과정과 주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라면 국물은 입안에서 사라지지만, 그 맛을 만들기 위한 시간과 노하우는 비밀이라는 형태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AI가 만든 창작물도, 그 학습 과정이 누군가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흡수했다면,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닌 침해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에 있다.

아직 법은 AI에 저작권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은 점점 창작자의 흉내를 내고 있고,
우리는 머지않아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감정 없는 손이 그린 그림, 눈물 한 방울 없는 시, 그 작품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어쩌면 그 답은, 한 그릇 국물 속에 이미 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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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글쓰기도 다르다. 혼자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된다.

“네가 라면 국물과 저작권을 연결해서 칼럼 하나 써줘.”

그럼 몇 초 만에 도깨비방망이를 뚝딱거리며 두들기듯 그럴듯한 글이 나온다.

문장은 매끄럽고, 구조도 탄탄하며, 아이디어도 신선하다.

“와, 이 정도면 공모전에 내도 되겠는데?”

하지만 바로 그때, 머릿속에 스치는 질문이 있다.

‘이 글, 진짜 내 건가?’
‘이걸로 수상해도 괜찮은 걸까?’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AI는 법적으로는 ‘나의 것’이 맞다고 한다. ChatGPT가 만든 결과물은 이용자에게 귀속되며, 상업적으로 활용하거나 수정, 출판해도 된다고 한 것이다.

즉, ChatGPT가 쓴 글로 책을 내거나, 블로그에 올리거나, 공모전에 응모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대부분의 공모전은 ‘창작자 자격’을 요구한다. 그 대부분의 공모 주최 측은 “AI 도구 또는 타인의 작품을 활용한 경우 수상 취소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즉, 법적으로는 문제없지만, 심사 기준에서는 실격될 수 있는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관건은 이것이다.

‘얼마나, 어떻게 AI를 활용했는가?’

AI가 쓴 초안을 그대로 제출하는 것은 대부분의 공모전에서 ‘본인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남이 만든 요리를 접시에 담아 제출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표현이다.

보기엔 그럴듯해도,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AI를 아이디어 도구로 활용하고, 글의 흐름을 바꾸고, 문장을 다듬고,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다면, 이는 창작 보조 도구 활용으로 인정될 수 있다.

특히, 최근엔 일부 공모전이 ‘AI 협업’을 허용하거나 장려하는 흐름도 생겨났다.

공모전은 단순히 글의 완성도를 보는 자리가 아니라, 글을 누가, 왜, 어떤 마음으로 썼는가를 묻는 공간이다.

AI는 구조를 잡아줄 수 있지만, 작가의 시선과 경험, 고유한 감정은 흉내 내지 못한다.

그것이 결국, 심사위원이 찾는 ‘창작자’의 흔적이다.

ChatGPT는 훌륭한 친구다. 하지만 친구가 써준 글을 내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을지는
늘 ‘기술’보다 ‘진정성’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AI가 써준 문장을 한 줄 지우고, 거기에 우리만의 문장 하나를 덧붙인다. 그때 비로소, 그 글은 ‘우리의 글’이 된다고 한다.

결국, 다양하게 진화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맞추어 그 수많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본인의 시각, 감정, 느낌 등과 동일한가를 검사하고 분명 여과시켜야 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향후 지속되는 AI 진화와 저작권의 암투에 최소한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기도 하다.

‘창작물은 결과가 전부가 아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손의 흔적, 지켜온 마음, 그리고 만들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결국, 그것이 창작이다.’

라면의 국물 앞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건 맛이 아니라, 그 맛을 낸 사람의 질문과 과정, 그리고 연구와 희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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