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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외국인이 대통령이라면,

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대한민국 최초의 외국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손(Robert Sohn). 한국 이름으로는 "손로버트",
국민들은 그냥 “손대통령”이라고 부른다.

미국 버몬트주 출신의 이 남자는 한국어는 서툴지만 김치에 진심이고, 제사상 앞에 두 손 모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 세상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더 놀란 건… 그 자신이었다.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보좌관들이 말한다.
“대통령님, 수고하셨습니다.”

손대통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Wait… I just started… 왜 벌써 끝난 것 같지?”

그는 몰랐다.
‘수고하셨습니다’가 한국에선 “잘했어요”도 아니고 “이제 퇴근하세요”도 아니며 그저 인생의 버퍼링용 인사말이라는 것을.


대통령 직속 정책회의.
한 장관이 말했다.

“대통령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손대통령은 기지개를 켰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그 장관은 그 뒤로 17분을 더 말했다.

다섯 번째 ‘마지막 한 마디’쯤에서 손대통령은 결심했다.
“다음 회의부턴 알람시계를 갖고 들어간다.”


청와대(구 용산 대통령실) 마당에서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생선, 과일, 술잔… 그리고 절.

손대통령은 물었다.

“이거… 불법 아니죠?”

보좌관은 말했다.
“전통적인 고사입니다.”
“무사안녕을 비는 거죠.”

손대통령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절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트위터에 해시태그를 붙였다.

시장에 갔다.
할머니가 묻는다.
“밥은 먹고 다녀?”

손대통령은 뭉클했다.
“와… 나를 이렇게 걱정해 주다니…”

하지만 옆 보좌관이 귀띔했다.
“그건 그냥 인사예요.
실제로 밥을 사주겠다는 건 아니에요.”

손대통령은 어쩐지 속이 허전했다.


청와대 정무수석 회식 자리.
손대통령은 말했다.

“I don’t drink.”

장내가 조용해졌다.
그건 마치 **“나는 숨 쉬지 않아요”**와 비슷한 발언이었다.

결국 그는 매실청을 들고 ‘건배’를 외쳤다.
그리고 술잔을 돌릴 땐 그저 ‘모양새’로 눈웃음을 지으며 버텼다.

한국 대통령은… 위장도 튼튼해야 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손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열었다.

그리고 5분 후 그는 방을 닫았다.

“이게 뭔가요 대통령님 진짜 실망입니다”
“지지철회합니다.”
“이모티콘 좀 그만 보내요.”
“공감능력 없음.”

손대통령은 조용히 종이 편지함을 주문했다.


아침엔 55%
점심엔 38%
저녁엔 42%

손대통령은 놀랐다.
“이게 주식인가요?”

보좌관이 설명했다.
“설문조사 기관이 다릅니다.”
“질문 문장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리고… 기분도 영향 있습니다.”

그날 밤 손대통령은 혼잣말을 남겼다.
“정치란… 감성의 수학이다.”


“대통령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게 되는 자리입니다.”

그는 김치찌개를 배달시켜 먹으며 이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나라엔 진심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그 진심이 제 때, 적당히, 예의 바르게 조심스럽게 웃겨야 합니다.”


그는 떠났다.
청와대 기념문구는 이렇게 바뀌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지구인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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