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탐정 권두칠
“지도교사… 권두칠?”
손끝이 떨렸다.
출석부에 적힌 이름, 그리고 교사란 칸에 적힌 자신의 이름.
“이건… 말도 안 돼. 난 그 반을 맡은 적이 없어.”
하지만 머릿속 한쪽, 어디선가 묻어둔 기억이 어렴풋이 움직였다.
몇 년 전. 그는 서울 외곽 작은 초등학교에 단기 강연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바로 그 학교였다.
그날, 교실 뒤편에 앉아 조용히 손을 흔들던 아이. 낯익은 눈매. 묻지도 못했던 이름.
“그 아이가… 가을이었나?”
권두칠은 곧장 2학년 2반 교실로 다시 올라갔다.
문을 열자, 빛 한 줄기 아래 책상 하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작고 말랐고, 머리카락은 땋아 내렸으며, 검은색 가방이 의자에 걸려 있었다.
“가을아…?”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미소 짓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이렇게 물었다.
“왜… 날 몰랐어요?”
두칠은 한 발 다가섰다.
“그땐… 내가 널 제대로 못 봤던 거야. 아니, 못 본 게 아니라… 못 기억하게 된 거야.”
가을은 가방을 열어 낡은 공책을 꺼냈다.
표지엔 분홍색 볼펜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귀신이 되면 아저씨가 찾아올 거야’
– 엄마가 그랬어요.”
그 순간,
교실 뒤편 스피커에서 기이한 노이즈와 함께 목소리가 흘렀다.
“2학년 2반, 권가을. 출석 확인. 단독 보존 처리 상태. 기억제거 프로토콜: 완료.”
“기억제거 프로토콜…?”
두칠은 숨을 멈췄다.
누군가, 가을을 ‘사건 피해자’가 아니라 ‘기록 속 오류’로 취급한 것이다.
그 순간, 교실 칠판이 스르륵 움직이며 뒤에서 비밀문 하나가 열렸다.
그 안은, 작은 관측실. 모니터 여러 대, 기억 조작 시나리오, 그리고 한 파일의 제목이 보였다.
[권가을 – 안전한 지움 계획서]
“가을이를 지운 게…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두칠은 책상을 내리쳤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을 때, 가을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기억해 줄 수 있어요?”
“아니. 이제… 다시는 안 잊을 거야.”
그 순간, 교실 전체가 기억 속 파편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벽에 적혀 있던 가을의 이름이 다시 선명해졌고, 그동안 비어 있었던 자리들이 하나둘 되돌아왔다.
권두칠은 교실 뒤 비밀 관측실에서 붉은 표지의 파일을 꺼냈다.
기록번호: 09-GHOST-K7
대상: 권가을
상태: 특별관찰 후 기억 제거 / 인물 인식 해제
이유: ‘기관 내부 접촉자와 관련된 2차 노출 가능성’
그는 숨을 멈췄다.
“접촉자…? 이건 단순 실종이 아니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가을이를 기억에서 없앴어. 그리고 그건… 나와 관련돼 있었다.”
문서를 넘기자, ‘관계자’란 항목 아래, 권두칠의 사진이 클립으로 끼워져 있었다.
하단 주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억 유도 실패. 대상자는 '권가을'을 손녀로 기억하지 않음. 회복 가능성 낮음.”
그때, 모니터 중 하나가 깜빡이더니, 스스로 켜졌다.
화면 속. 병원처럼 보이는 흰 방 안에 작은 아이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을아…?”
그는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가을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기, 아빠도 있었어요. 근데…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냥 없어진 거라고… 그냥 잊으라고…”
그 순간, 뒤에서 낯선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하얀 정장을 입은 남자 하나가 들어섰다.
“접근 금지 구역인데, 어쩌다 들어오셨습니까?”
그는 침착했지만, 말투엔 기계적인 정보 통제자의 냄새가 났다.
권두칠은 그에게 문서를 들이밀었다.
“이게 뭡니까. 왜 내 손녀를… 내 기억에서까지 지운 겁니까.”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권가을 양은 귀신이 아닙니다. 그냥… 너무 많은 걸 본 아이였죠. 그래서, 보호 차원에서 지운 겁니다.”
“보호? 네가 말하는 보호가 존재를 없애는 거냐?”
남자는 조용히 손목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그 아이는 아직, 돌아올 수 있어요. 단, 당신이 본 걸 입 다문다면.”
그때, 스피커에서 가을의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저씨… 난 괜찮아요. 근데… 다른 아이들은요? 다른 사람들도… 다 지워졌어요?”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권두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난, 입 안 다문다. 기억은 죄가 아니다. 죄는… 그걸 지우는 쪽이지.”
그 순간, 교실의 전등이 꺼지고 시스템 전체가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서버에서 불꽃이 튀었고, 모니터 하나에 마지막으로 가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이제… 저, 진짜로 기억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