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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휴지의 기억

기억을 요리하는 랩소디

콧물이 계속 나왔습니다

아마도 지난날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끌어내어 차곡차곡 코를 훔쳤습니다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코를 훔치면서도 다시 내게 두루마리 휴지를 내놓으라던 아버지. 그러면서도 미안한 미소를 잊지 않으셨던 아버지.

길 떠나시던 날,

일백 년을 넘기신 아버지의 주머니에는 내가 드린 휴지 뭉치가 여운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도 충분히 남아있는 두루마리 휴지가 주인을 잃은 듯 말이 없습니다.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끊어 코를 훔치면서 시큼한 무엇이 눈을 적시는 걸 목격합니다.

나비처럼 훨훨(그림 윤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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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버지"

나는 어린 날 센베 과자가 가득 담긴 종이봉투를 한 아름 안고 웃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미소 지으셨던 아버지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릅니다. 그렇게 내 어린 날은 아버지와 맛난 한 봉지로 즐겁게 점철되어 있습니다.


보석은 아니어도 빛나던 그 순간이 이제 서서히 사라질까 글로 남겨 봅니다. 춥다고 나가지 말라던 엄마의 말씀도 마다하고 뛰어갔던 아버지의 귀갓길. 한참을 오들오들 떨며 서있는데, 아버지가 멀리서 뛰어 오십니다.

"추운데 왜 나왔어? 엄마는?"

나는 대답보다 아버지의 손을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없어요?"

"이런! 아버지보다 먹을 것을 마중 나온 게로구나. 괘씸한 하하."

시무룩한 내 표정에 아버지는 군고구마가 달콤하게 익어가는 리어카 장수 앞에 섰습니다.

"왜 고구마 사게요?"

나는 어느새 군침을 삼기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꺼내다가 물으셨습니다.

"몇 개 살까?"

"내 것 하나만 사도 돼요."

집에 있는 형 그리고 누나, 여동생도 필요 없었습니다. 맛있는 건 나만 먹으면 되는 거니까요.

"아! 두 개요. 엄마."

"그럼. 아버지는?"

아버지는 드시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나는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사주는 것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움(그림 윤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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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가시던 2023년 사월 초파일, 아버지에게 식사를 드리던 나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그건 희한하게 꺼이꺼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이 아버지한테 매달려 우는 모습에 먹먹해졌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사주셨던 과자봉지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 나중에 봐요."

영안실을 빠져나오던 나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내 손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쓰셨던 두루마리 화장지가 꼬깃꼬깃 쥐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걸을 때면 어디선가 아버지가 과자봉지를 들고 서 계실 것 같습니다.

"아버지! 그거 내 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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