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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인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 그 이유 없다

전세사기 열전

"배당요구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어렵게 구한 전세 공간이 경매에 들어갔다. 임차인 갑수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찔함을 느꼈다.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던 갑수 씨는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두리번거리다가 법원에서 온 안내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갑수 씨는 오랫동안 시신경에 문제가 있어 법원의 안내문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마음에 충격을 받았으니 더하겠지." 지인 동원 씨가 그가 내놓은 문서를 대신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마음만(그림 윤기경)

"권리신고랑 배당요구를 하라는데."

"그게 뭔가?"

동원 씨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혀를 끌끌 찼다. 그의 얼굴은 잔뜩 지푸러졌다.

"내가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겠군."

"그 일이라니?"

"예전에 잘 알고 지내던 분 중에 최희순 할머니라는 분이 계셨지."


간접살인의 예견


최 씨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물론 슬하의 자녀를 전쟁 중에 다 잃었다고 한다. 간신히 친척 조카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더부살이를 했지만, 할머니는 오래전 작은 전세방을 얻어 독립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친척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근근이 모아 두었던 수천만 원의 돈은 할머니가 가진 동산 전부였다. 그 돈으로 단칸방 하나를 얻어 입주한 것이다. 그러다가 법원에서 집행관이라는 분이 찾아왔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방의 건물 전부가 경매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럼 물어봐야지." "법원에서 왔다는 분이 상세하게 설명은 했데." "주변엔 누가 없었나?" "워낙에 얌전한 분이라, 뉘한테 묻는 건 더 힘들어하셨지." "법원에 물어보시지 않고." "워낙 노년이어서 그런 건 생각도 못하셨는 걸."


먹먹한 대책


최희순 할머니는 결국 그 후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친척 조카가 병원으로 모셨는데 깨어나질 못하셨다고 한다. 이게 법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우리 주변엔 얼마나 어떤 식의 많은 약자가 있고 어떤 식의 간사한 전세사기가 있는지 모른다. 경매까지 이르게 된 것이 사기는 아닐지라도, 거기에 대처하는 임차인의 노고는 서글프다. 우선, 권리신고 및 배상요구서를 작성해야 하고 전세확정일자가 있는 전세계약서, 그리고 주민등록 등(초) 본이 필요하다. 갑수 씨처럼 동원 씨 같은 지인이 있으면 도움을 받겠지만, 지방법원 경매계를 찾는 것도 노약자들에게는 참 멀기만 하다.

두개의 얼굴(그림 윤기경)

그런데도 정부는 전세사기에 대비해서 저리 융자를 해주느니 뭐래니 외치다가 요즘은 그마저도 조용하다. 대책도 아닌 대책이라 생각한 동원 씨는 눈살을 다시 한번 찌푸리고 있다.


전세사기 없애면 츨산율이 오른다?


불안한 전세. 그 사실은 우리 같은 범부들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방증이다.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어렵게 얻은 전셋집에 안심을 놓았던 신혼부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혹여 전세사기를 당할까 봐, 수시로 그 건물의 등기를 확인하고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 했다.

만약 집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사기에 얽히면 그들은 한 푼도 없이 소송戰에 휩싸인 전세방을 구경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들 아이를 낳겠는가? 헛다리 짚는 정부를 사기꾼들이 농락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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