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쳐 오신 교수님을 만났다. 함께 오신 그 대학에서 수필 강의를 하고 계신 두 분 교수님 앞에서『이상 오감도 해석』책을 드리고 간단한 설명을 했다. 수십 년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쳐 오신 교수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이상은 천재 민족시인이다. 건축기사였고 조선총독부에 4년간 근무했다. 그리고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것이 오감도의 바탕이다. 90년 가까이 알려져 있던 “초현실주의” “자아분열” “자위” “섹스” 등등의 해석은 참담한 오독이다.
건축기사라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오감도가 설계 도면 형식으로 구성되고 배치된 것이다. 제목 오감도는 조감도이고, 시제1호가 전체도면이다. 시제2호가 강제한일합방, 시제3호가 3.1운동, 시제4호가 만주사변과 민족분열을 주제로 한 세부도면이다. 오감도 시제5호, 시제6호가 강제한일방의 상세도면이다. 오감도 시제7호부터 시제11호까지가 3.1운동에 이어지는 조선민족 항일투쟁의 상세도면이고 오감도 시제12호부터 15호까지가 만주사변과 민족분열, 즉 무서운 예해인 친일파에 분노하고 응징하는 상세도면이다. 또 하나, 강제한일합방 당시 조선 인구 1천3백만을 “13인의 예해”로 표현한 것과, 시제4호 숫자사에 점과 시제7호 한자 사이에 점이 일장기를 상징하는 것 역시 건축설계의 축소비율을 적용한 건축기사적 발상이다. 오감도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한 건축적인 구조물이라는 것에 머리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이상이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것이 오감도를 쓰게 된 동기이다. 이상은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면서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식민지 약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목격하고 조선 민족에게 절규로 알리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의 목적은 조선 민족과 조선의 말살이다. 조선을 지워버리고 일본으로 만들겠다는 치밀한 야욕이다. 그 본질에 대해 각성하라고 이상은 조선 민족에게 외친다. 시제9호는 조선어 사용금지, 시제10호는 일본군 위안소설치, 시제11호는 황국신민화에 대한 저항이다. 시제12호는 만주사변과 민족분열, 친일파의 등장을 알린다. 시제13호 신사참배, 시제14호 식민주의사관, 시제15호 창씨개명과 황국신민으로 귀화가 시의 내용이다. 이러한 오감도 연작시가 더 이어지지 못하고 15편에서 중단된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상이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시제5호 실패한 사기강제한일합방 조약서를 완성되지 않는 사각형 그림으로 그려 표현하고 시제10호 거울 가운데 수염, 이 수염은 일본왕과 조선총독 모두가 기르던 콧수염이다. 의족 담은 군용장화 등 오감도 연작시 곳곳에 시각상징을 그림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내 설명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교수님께서 놀라움을 넘어 당황하시는 것이 보였다.
오감도에 100개가 넘는 이상식 한자 조합단어를 기존 학자 평론가들이 오식(잘못 쓴 글자), 조어(의미 없는 글) 등으로 해석한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어떻게 100개가 넘는 단어를 잘못 쓸 수 있는가? 또한 100개가 넘는 의미 없는 단어를 늘어놓은 것을 시라고 신문에 발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1934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 민족 청년 시인이 말이다. 초현실주의? 웃음만 나온다. 이상식 한자 조합단어는 우리 민족의 “한자 이름짓기”와 발상이 다르지 않다. 간단하고 재미있는 한글 문장 숨기기다. 시제7호 화자는 윤봉길의사다. 시제8호는 일본왕 히로히토를 가상으로 해부, 육시한다. 이것을 한글 시로 발표할 수 있는가? 이상식 한자 조합단어로 한글 문장을 숨겨 발표한 것이다.
내 『이상 오감도 해석』을 거듭 격려하시고 응원해주시는 교수님 표정에 놀라움과 당황을 넘어 얼핏얼핏 공포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수십 년 해오신 국문학 강의 속에 들어있었을 저 찬란하고 거대한 90년 문학 기득권에 대한 공포라고 나는 느꼈다. 약속했던 시간이 제법 지나있어서 우리는 자리를 끝내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윤석렬 후보의 지지율이 40%를 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딱한 세상이다. 이따위 세상에 『이상 오감도 해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디 억울하게 짓밟힌 시인이 이상뿐인가? 웃음만 나온다. 이상이 오감도 연재를 중단당하고 남긴 말이다.
“중략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 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달고 그만두니 서운하다. 중략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