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습적 시읽기의 거부 (2) 강희근교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by 김유섭

강희근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747)

(503)문단에 이는 인습적 시읽기의 거부와 비평글 다시읽기의 바람(2)

경남일보


김유섭 시인은 앞에서 말했지만 시단에 인습적 시읽기를 거부하고 나타나, 혜성과 같이 빛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도 김시인의 『한국 현대시 해석』에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대한 인습 벗기기에 귀를 기울여볼까 한다.


가난한 내가/ 아룸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 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 푹 내리고/ 나는 혼자 슬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 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촐촐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 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 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알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이 시에 대해 김유섭 시인의 말을 들어볼까 한다. “이 시는 연애시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실존 기생 진향(김영한)과의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도 한다. 백석이 술을 마시면서 환상 속에서 진향과 세상의 관심을 피해서 산골로 들어가서 둘이 살자고 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상상으로 이상적 순수의 사랑을 꿈꾸는 시라고도 한다.”


그러나 김시인은 “이 시는 연애시가 아니다. 백석은 수준 높은 시를 쓴 시인이다.시에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배치되어 번쩍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백석의 시 특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시적 자유’ ‘낯설게 하기’ 등을 동원해서 연애시로 주장하는 해석은 버려야 한다.”


“먼저 설펴야 할 것이 있다. 이 시가 발표된 것은 1938년이다. 이 무렵 일본은 조선어 사용 금지를 비롯한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을 강화하면서 극악으로 시행하고 있었다. 조선 땅에서 조선 민족을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하겠다는 왜놈들의 악랄함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또힌 1937년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조선에서 인력수탈,물자 수탈 등 폭압의 식민지배가 극악으로 치닫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백석이 이 작품을 쓴 것이었다. 이 적품은 상상의 시이고 한탄의 시이다.

여기서 왜 제목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인가 하는 것이다. 흰 당나귀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다.이는 상상에 바탕을 둔 시라는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접속조사 ‘와’를 사용해서 ‘나- 나타샤- 흰 당나귀’가 동일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나타샤이고 나타샤는 흰 당나귀이고 흰 당나귀는 나인 것이다. 운명 공동체이다. 그래서 운명공동체를 사랑하면 일제로서는 용납되지 않고 오하려 그런 공동체에 푹푹 나리는 눈은 형벌로 내리는 눈이 된다”


이쯤 되면 사랑시가 아니라 독립지향의 민족애가 그 의미일 터이다.


이렇게 김유섭은 인습에 젖어서 누구나 사랑시라 하는 그 사랑시를 무조건 ‘받들어총’ 하지 않는다. 인습으로 읽으며 자칫 시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거부하는, 시의 정상 독해의 편에 손들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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