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748) 문단에 이는 인습적 시읽기의
강희근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748)
(504)문단에 이는 인습적 시 읽기의 거부와 비평글 다시 읽기의 바람(3)
경남일보
이 글은 3회째 인습적 시 읽기의 거부와 비평글 다시 읽기의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김유섭 시인에 의해 촉발된 ‘한국 현대시 인습적 독해의 거부’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언제나 시단의 주요한 이슈는 그 변방에서 시작된다. 김유섭 시인은 지금 진주시에 있으면서 1인출판사 ‘BOOK속길’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그 많은 출판사를 등지고 스스로 좁은 길, ‘머너먼 스와니강’노래를 부르며(상상) 엎드려 지내는 것일까! 한 번쯤 현대판 방랑시인 김삿갓이 주유천하 하고 있다면 그는 누구일까, 상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김시인이 필자를 만났을 때는 그의 영재적 결실인 『이상 오감도 해석』을 발간하려는 쯤이었고 김소월, 백석, 한용운, 김수영, 이 상 등에 대한 ‘인습적 시읽기 벗기기’에 해당하는 설명을 듣고는 필자는 그 내용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김시인에게 권유했다.
따라서 필자는 김유섭 시인의 저서 『한국 현대시 해석』 출간에 있어서는 나름 세상에 보급되는 데 있어서는 소정이 연대감이 있어서 판권을 넘겨보시고 일독해 주시기를 대학의 국어국학과 전임 교수로서 독자들에게 귀띔해 드린다. 오늘은 김소월의 「초혼」 다시 읽기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켜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김유섭시인의 해설을 따라가 보자. “김소월의 ‘초혼’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에 처음 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죽은 이후 영혼을 불러들여 죽은 사람을 살려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의례화된 것을 ‘고복의식’ 또는 초혼이라 한다. 사람이 죽은 직후 그가 입던 저고리를 왼 손에 들고 지붕 위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아무 동네 아무개’라고 죽은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복은 회복할 복이다. 죽음의 길로 가지 말고 돌아오라는 뜻이다. 따라서 초혼은 죽은 이를 소생시키려는 의지를 표현한 ‘부름의 의시’이라고도 한다. 역으로 죽음의 선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살리려는 강렬한 열망의 표현이다.
또한 왕이 죽으면 내시가 궁궐 지붕 위에 올라가 곤룡포를 세 번 휘두르면서 ‘상위복’하고 외친다고 한다. 상위는 임금 즉 왕을 가리킨다.”
그런데 김시인은 분석한 의미구조를 통해 임금은 고종이고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총독부 사주로 독살당한 임금이었다.
김유섭 시인이 재해독한 시편들에는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이 상의 「오감도」, 김수영의 「풀」 그리고 「초혼」이다. 자세한 부분은 『한국 현대시 해석』이나 『이상 오감도 해석』을 직접 구해서 읽기를 권한다. 우리시편들이 인습이나 사조적 현학주의에 의해 끊임없이 오독의 수난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변방 연구자들의 노력에 빚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하겠다.
더구나 글자를 글자로 읽는 일 같은 평범의 비범은 학계가 아니라 사범학교 출신 교장(한명자 시인) 등에게서 그 온당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바 있다. 거듭 말하지만 50년전 나온 시집의 대가의 서문에서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던 ‘세계시’ 또는 ‘세계시문학의 표본’이라는 문맥을 왜 문맥대로 읽지 않는가 하고 따졌다는 일화를 두고 국립한국문학도서관 관장 문정희 시인은 그 말에 소름이 돋는 감명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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