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 풀 상세해석
김수영의 “풀”에 대한 해석은 발표된 지 50년이 더 된 지금도 심오한 시, 난해한 시 등 설왕설래에 휩싸여 있다. 지금도 수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세세하게 살펴보겠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전문-
3연 18행으로 이루어진 시다. 1968년 6월 16일 김수영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20일 전에 쓴 시로 현대문학 8월호에 유고로 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가 완성된 시점은 1968년 5월 29일이라고 한다. 이 날짜는 중요하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1연-
풀이 눕는다. 그 이유가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서이고 이어서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고 한다. 세 가지의 의문이 든다. “동풍”과 “나부껴서”와 “드디어”이다.
동풍은 봄에 부는 바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부껴”는 바람에 풀이 가볍게 흔들리는 모습인데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풀이 가볍게 흔들리지 않는다. 세차게 흔들린다. 그래서 풀이 눕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려면 “나부껴”라는 동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이어지는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라는 진술에서 “드디어”가 왜 쓰였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이 풀을 눕게 하고 울게 하는 원인인데 “드디어”는 풀이 울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과연 풀에게 비와 바람이 슬픔인가? 비와 바람은 풀에게 반가운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논리 모순이다.
반면 울음을 기쁨의 울음이라고 해석하면, 기다리던 기쁨의 비가 드디어 내린다는 의미로 “드디어”가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두 행에서 다시 논리 모순이 발생한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앞서 풀을 울게 했던 것은 비를 몰아오는 동풍이었다. 이것이 기뻐서 우는 것이라면 날이 흐려서 더 울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특히 “더”라는 부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날이 흐린 것이 기쁨을 더해주는 독립된 원인이라는 논리가 되는데 비가 오면 날은 대부분 흐리다. 결코 비를 몰아오는 바람과 따로 떨어진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김수영이 논리 모순의 시를 쓸 시인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논리 모순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있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과 “풀”이 자연의 현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풀이 눕”는 행위와 “날이 흐려서”와 “더”와 “다시” 역시 자연 현상과 관련 없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2연-
“풀”이 상징하는 것의 속성을 김수영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자연 현상에서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은 없다. “풀”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것이다. 앞서 1연에서 “비를 몰아오는 동풍”이라고 했는데 2연부터 “바람”이라고 한다. 동풍은 바람이고 바람이 동풍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바람 역시 자연의 바람이 아니다.
자연의 바람이 아니라면, “바람”의 사전적 의미 중에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인 경향”이 맞다. 따라서 풀이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에 더 빨리 눕고 울고 먼저 일어난다고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김수영이 1연에 “동풍”을 명시한 이유를 살펴야 한다. 1968년 봄에 사회적으로 일어난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인 경향을 의미하는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1968년 봄 사회적으로 일어난 일 중에 3선개헌이 있다. 시인 김수영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으리라 짐작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박정희의 집권 연장을 위한 3선개헌이 *국민복지연구회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5월 24일 공화당에서 관련자들에 대한 제명 처분이 내려진다. 김수영이 “풀”을 완성했다고 알려진 날이 5월 29일이다. 이것이 김수영이 1연에 “동풍”을 의도적으로 명시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김수영은 3선개헌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시로 쓴 것이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집권 연장을 위한 3선개헌은 민주주의(풀)가 병들어 눕는 것이고 또한 민주주의의 근본(풀뿌리)이 병드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풀”은 민주주의를 상징하고 “동풍” 즉 바람은 1968년 봄 세상에 드러난 3선개헌을 상징한다. 풀을 민주주의로 그리고 동풍 즉 바람을 3선개헌으로 바꿔서 읽으면 앞서 논리 모순의 “나부껴” “드디어” “흐리고” “더” “다시” 등의 단어들이 충돌하지 않는다. 또한 마지막 행 “풀뿌리가 눕는다”는 진술 역시 느닷없는 생경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3연-
날이 흐리다는 것은 3선개헌의 현실에 희망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병들어 눕는다. /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는 민주주의가 바닥까지 병들어 눕는 것이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2연에서 보았던 민주주의의 속성이면서 3선개헌에 저항하는 시인 김수영의 바램을 다시 반복해서 드러낸다. 어떤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는 일어나고 웃는다. 아니 일어나고 웃어야 한다고 김수영이 소리치는 것이기도 하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민주주의의 근본이 병들어 눕는다.
1968년 4월 부산 문학 세미나에서 김수영이 발표했다고 하는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시론 속에 한 구절인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구절과 김수영이 1968년 5월 29일 쓴 것으로 알려진 “풀”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풀)
민주주의가 병들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3선개헌에 나부껴
민주주의는 병들어 눕고
드디어 울었다
현실이 희망이 없어서 더 울다가
다시 병들어 누웠다
민주주의가 병들어 눕는다
3선개헌보다도 더 빨리 병들어 눕는다
3선개헌보다도 더 빨리 울고
3선개헌보다 먼저 일어난다
현실이 희망이 없고 민주주의가 병들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3선개헌보다 늦게 누워도
3선개헌보다 먼저 일어나고
3선개헌보다 늦게 울어도
3선개헌보다 먼저 웃는다
현실이 희망이 없고 민주주의의 근본이 병들어 눕는다
-김수영, 풀을 해석한 전문-
*각주: 1968년 민주공화당김종필(金鍾泌) 계열의 ‘한국국민복지연구회’에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위한 3선개헌은 저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개진했던 일종의 당내 항명파동.
내용
공화당 내에 비공식적으로 생긴 한국국민복지연구회가 조직을 확대하기 위해 9백여 명의 포섭 대상자들에게 배포한 정세보고서에 대통령 박정희를 모독하는 내용을 게재하여 문제가 발단, 공화당은 1968년 5월 24일 소집한 당기위원회에서 관련자들을 해당(害黨) 행위자로 규정하고 제명처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민복지연구회사건 [國民福祉硏究會事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