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울대는 없어져야 한다. 극치의 교만과 편견은 시도 시인도 우러러보지 않는다. 극치의 교만과 편견이 오감도 시제9호 列風(열풍)의 ‘줄짓다’ 의미인 ‘벌일 렬(列)’을 마음대로 더울 열(熱)로 바꿔 고쳐서 각혈로 해석하기도 했었다. 시인이 쓴 시를 해석자가 고쳐서 해석한다는 것은 돌대가리인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본말전도라는 어렵고 수준 높은 단어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한다. 극치의 교만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런 극치의 교만과 편견에 갇힌 시 해석은 김수영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풀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풀, 1연(김수영)-
풀이 눕는 이유는 비를 몰아오는 동풍 때문이라고 김수영이 말하고 있다. 동풍은 봄바람이다. 비를 몰아오는 봄바람에 풀이 눕고 이어서 드디어 울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울지? 풀은 봄바람이 몰아오는 봄비가 반가운 것인데, 기다리던 봄비가 와서 기뻐서 드디어 울었다는 것인가? 그러면 이어서 날이 흐려서 더 울었다고 하는 것은 뭔가? 비가 오면 날이 흐린데 왜 새삼스럽게 더 울었다고 하나? 그리고 왜 다시 누웠다고 “다시”라는 부사를 사용해서 강조하나? 논리가 부딪힌다. 문장의 의미가 서로 충돌하면서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돌대가리인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김수영의 뇌 구조를 본다. 뇌 작동방식을 본다.
/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 라는 진술은 김수영이 봄바람(동풍)과 풀이 자연의 봄바람과 풀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려는 의도에서 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수영의 뇌가 그렇게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바람의 사전적 의미는 1.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중략.. 4.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인 경향. 중략... 이다.
김수영이 풀에서 말하는 바람은 4번째 의미인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 경향’이다. 즉 동풍, 봄바람은 1968년 봄에 일어난 사회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인 경향이다. 그것은 ‘삼선개헌’이다. 따라서 바람은 삼선개헌이고, 풀은 민주주의이다. 풀을 다시 읽어보자.
민주주의가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삼선개헌에 나부껴/민주주의는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
의미충돌이 있는가? 부사 ‘드디어’와 ‘다시’가 문장의 의미를 잘 연결하고 있지 않은가? 흐려서는 희망 없음을 의미한다. 극치의 편견과 교만은 김수영이 왜 동풍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바람을 자연의 바람으로 단정하고 고집할 뿐이다. 50년 아니, 100년 동안 극치의 교만과 편견은 이렇게 한국시를 지배해 왔다. 극치의 교만과 편견아 문장만 읽지 말고 시와 시인을 존중하면서 시인의 뇌 구조와 뇌 작동방식을 읽어라. 서울대는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