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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섭 Sep 07. 2022

김소월 초혼 해석 - 고종의 죽음

김소월 초혼 100년의 한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의 「초혼」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에 처음 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죽은 직후 영혼을 불러들여 죽은 사람을 살려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의례화된 것을 고복 의식 또는 초혼이라 한다. 사람이 죽은 직후 그가 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아무 동네 아무개 복復」이라고 죽은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복復은 회복할 복이다. 죽음의 길로 가지 말고 돌아오라는 뜻이다. 따라서 초혼은 죽은 이를 소생시키려는 의지를 표현한 ‘부름의 의식’이다. 이는 역으로 죽음의 선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 형식과 의미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살리려는 강렬한 열망의 표현이다. 또한 왕이 죽으면 내시가 궁궐 지붕에 올라가서 곤룡포를 세 번 휘두르면서 “상위복” 하고 외친다. “상위”는 임금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시는 김소월이 누군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살아 돌아오라고 강렬하게 열망하는 시라는 것을 제목으로 알 수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초혼, 1연-  

   

 1연 4개의 행으로 이루어진 진술이 모두 죽음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초혼 의례인 사람이 죽은 직후 이루어지는 ‘죽은 직후’라는 시간과는 관련 없는 진술이다. 이를 3연 3행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미 죽어 산에 묻힌 사람을 초혼 의례로 다시 살려내려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살펴야 할 것은 네 번이나 반복되는 “이름”이다. 초혼 의례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이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죽은 사람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호칭인 임금을 의미하는 상위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죽음으로 이름이 산산이 부서졌다.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죽음으로 이름과 허공 중에 헤어졌다.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죽음으로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 되었다. 

  이는 “이름”이 어느 죽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는 의미구조이다. 따라서 “이름”은 호칭 즉 임금을 의미한다. 임금이 죽으면, 죽은 임금에게서 호칭인 임금은 현실적으로 없어진다. 그런데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은 임금이라는 호칭이 산산이 부서지는 방식으로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이는 임금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산산이 부서지는 방식으로 죽었다는 강조이면서 동시에 왕조의 멸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 역시 허망하게 임금이라는 호칭과 헤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임금이 죽으면 임금이라는 호칭은 불러도 주인 없는 호칭이 된다. 누군가 다음 임금이 될 때까지. 또는 화자가 다른 누군가를 임금으로 받아들일 때까지일 것이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러나 화자인 나는 죽은 임금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임금으로 부르겠다 한다. 이는 죽은 임금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초혼 의례로 살아나게 해서 임금으로 돌아오기를 열망하면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초혼, 2연- 

    

  2연에서도 반복해서 더 세밀하게 임금의 죽음 방식과 그 죽음에 대한 화자의 마음을 드러낸다.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람은 대부분 죽을 때 유언을 한다. 그러나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라는 진술은 임금이 유언을 마저 하지 못할 정도로 급박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는 급살을 의미한다. 1연과 2연의 진술로 드러나는 임금의 죽음 방식은 ‘산산이 부서져 허망하게 급살당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동시에 임금이 뜻하던 것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소월이 진술하는 임금은 누구이고 또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한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무엇이었을까?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이 나오기 전에 김소월이 목격한 임금의 죽음은 고종이다. 고종은 강제 한일합방 이후 제국주의 일본과 계속 대립했다. 결국 한일합방이 제국주의 일본의 총칼을 앞세운 강압으로 이루어진 불법이었음을 알리고 조선의 주권 회복을 위해 1918년 이영회의 도움으로 독일 등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조선 총독부에 발각되었고 결국 조선 총독부의 지시를 받은 친일파들에게 1919년 독살당했다. 고종 독살은 소문으로 퍼져서 조선 민족 누구나 알게 되었다. 이것이 3.1운동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이다.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조선의 주권 회복이고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는 끝끝내 조선의 주권 회복을 이루지 못하고 독살당했음을 의미한다.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영탄법을 사용해서 애절하고 간절한 마음을 강조한다. 제국주의 일본의 사주로 조선의 주권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독살당해 죽은 고종을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라고 초혼 의례로 애절하고 간절한 감정을 드러내며 살아 돌아오라고 반복해서 부른다. 

  살펴야 할 것은 “사랑하던” 과거 시제이다. 1연에 이어서 임금인 고종의 죽음을 과거로 진술하고 있다. 이는 고종이 죽은 뒤 세월이 흐른 어느 시점에 초혼 의례 형식으로 쓴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초혼, 3연-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김소월이 더러 사용하는 표현이다. 여기서는 주권을 빼앗긴 채 멸망을 향해 저물어가는 조선과 조선 민족의 막막함을 서산마루에 해 지는 풍경으로 펼쳐놓은 것이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사슴은 삼국시대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그 예로 신라의 금관은 사슴뿔을 형상화한 것이다. 백제는 왕이 직접 *신록이라는 날개 달린 사슴을 잡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의 궁궐에서도 청록((靑鹿) 조각상 등으로 볼 수 있듯이 사슴은 왕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민간에서는 십장생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따라서 “사슴의 무리”라는 진술은 조선 왕의 “무리”라는 의미이다. 이는 조선 왕조를 의미한다. 제국주의 일본에게 독살당해 죽은 고종의 죽음을 화자인 나뿐만 아니라 조선 왕조도 슬퍼한다. 고종의 죽음은 조선 왕조의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살던 집 지붕 위나, 마당, 또는 궁궐 지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초혼 의례이지만, 이 시에서는 떨어져 나가 앉은, 즉 죽어 땅에 묻힌 고종의 무덤이 있는 산 위에서 이루어지는 초혼 의례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진술이다. 

  화자는 고종의 무덤이 있는 산 위에서 살아서 돌아오라고 초혼 의례로 이름을 부른다. 이는 화자가 독살당해 죽은 고종을 살아 돌아오라는 것이 아니라 산산이 부서지고, 허공 중에 헤어지고, 불러도 주인 없는 조선의 주권이 살아 돌아오라는 의미이다.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초혼, 4연- 

    

  설움의 뜻은 ‘원통하고 슬프다’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사주한 친일파들에게 독살당해 죽은 고종의 죽음은 강제 한일합방 이후, 그나마 조선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하는 조선 민족이 놓지 않고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게 한 처참한 사건이었다. 이는 조선 민족에게 억누를 수 없는 원통한 슬픔이었다. 그래서 “겹도록”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서 강조하면서 두 번이나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라며 김소월은 울부짖는다.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살아 돌아오라고 초혼 의례로 부르는 이름이 비스듬히 스쳐 지나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서 죽은 고종을 또는 조선의 주권을 다시 살려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미미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 희망이 무너진 현실 인식을 의미한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초혼, 5연-

     

  그러나 마지막 5연에서 김소월은 조선의 주권 회복에 대한 더욱 강렬한 열망과 결연한 마음을 드러낸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망부석 전설을 의미한다. 망부석은 정조를 굳게 지키던 아내가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죽어 화석이 되었다는 돌이다. 

  화자인 김소월이 기다리는 것은, 고종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주권 회복이다. 고종이 조선이고 조선의 주권이라는 김소월의 국가관을 알 수 있다. 조선 민족의 정조를 굳게 지키면서 친일로 돌아서지 않고 선 채로 돌이 되더라도 조선의 주권 회복을 열망하며 기다리겠다는 의미이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나 김소월은 죽는 순간까지 조선의 주권 회복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죽을 것이라는 강렬한 열망의 결연함이다.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2연에 이어 김소월은 영탄법을 사용해서 원통함과 슬픔을 거듭 강조한다. 반복해서 조선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격렬하게 소리치면서 시를 끝낸다.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는 제국주의 일본에게 독살당해 죽은 고종이면서 동시에 조선의 주권이다. 초혼이 발표된 지 100년이 다 된 지금 읽어도 임금과 나라 잃은 원통함과 슬픔에 겨운 김소월의 울부짖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부디 이 해석으로 김소월의 원통함과 슬픔 그리고 억울한 100년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란다. (2022년 9월 7일 김유섭 씀) - 도용과 표절을 막기위해 다음 브런치, 찬란한 봄날 블로그에 동시에 올립니다. <도용, 표절 금지> 


              

*신록(神鹿)은 상상의 동물 중 하나로 흔히 날개가 달린 사슴으로 묘사된다. 사슴의 경우에는 조선의 궁궐에 있는 청록(靑鹿) 조각상 등으로 볼 수 있듯이 왕을 상징하는 동물인데 신록은 이름부터가 신성한(神) 사슴(鹿)이라는 뜻으로 신성함, 즉 제왕을 나타내는 동물이다. 중략....  

            -네이버 나무위키- 

    

  〔참고자료〕 : 1920년 7월 10일자 『매일신보』는 돌아가신 이태왕 전하의 존호를 고종태황제로 올리면서 민비전하의 호칭도 명성황후로 승격시키기로 일본 궁내성이 내정했다고 보도하였다. 중략....  하지만 실제로는 이후로도 격하시킨 명칭만이 그대로 통용되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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