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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섭 Sep 15. 2022

한용운 님의 침묵 해석

님의 침묵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는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은 고종 16년인 1879년생이고 27세인 1905년 정식으로 출가했다. 또한 1909년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다. 조선불교유신론은 한용운을 철학자이면 개혁가에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이었던 독립운동가였다. 지금까지 시인이고 승려이고 독립운동가였던 이 세 가지가 한용운의 시를 읽는 배경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는 한 가지를 빠뜨린 것이다. 

  한용운은 몰락한 양반 사대부 가문 출신으로 27세에 정식으로 출가하기 전인 6세부터 성곡리의 서당골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따라서 앞서 세 가지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 한용운은 몰락했지만, 사대부 출신의 유학자였다. 즉 유교의 충효 사상과 왕에게 충성하는 불사이군의 정신과 왕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가치관에 이어지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관이 그의 나이 47세인 1926년 간행한 시집 『님의 침묵』에 드러나 있다. 「님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갔다”는 사람이 죽었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따라서 “님은 갔습니다”는 님은 죽었습니다. 이다. 즉 내가 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탄식이다. 여기서 님은 부처도 연인도 조국도 아닌 왕이다. 한용운은 승려이기도 했지만, 시에 드러나 있는 세계관은 유학자의 충효와 불사이군의 정신이다. 즉 그에게 님은 불사이군의 왕이다. 이 왕은 고종이고 또한 한용운에게 고종은 조선이고 주권이기도 하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상여에 죽은 사람 시체를 실어 상여꾼들이 어깨에 메고 날라서 무덤에 묻는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상여꾼이 무덤까지 운반해 가는 산길을 의미한다. 

  “참어”는 앞일의 길흉화복에 대하여 예언하는 말이다. 따라서 님은 앞일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말을 떨치고 죽었다. 이는 왕 즉 고종의 죽음이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길흉화복이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부딪치며 사는 현실이다. 또한 예언이라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비록 미래에 대한 예언이 길하고 복만 넘치는 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죽었다 하는 것은 화자가 고종의 죽음에 대해 왜 죽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의문에서 멈춘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고종의 죽음은 유교의 충효와 불사이군 정신으로 왕과 신하 또는 왕과 백성으로 맺었던 유교적 맹서가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간 허무한 것이 되었다는 탄식이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왕과 신하 또는 왕과 백성으로 만났던 추억은 고종의 죽음으로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다. 고종의 죽음이 화자인 한용운에게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는 충격적이고 허망한 사건이었다는 고백이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는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왕과 나의 관계가 충효와 복종, 불사이군의 절대적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모든 만남은 이별이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고종의 죽음은 뜻밖의 일이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고종의 죽음이 뜻밖의 사건이고 그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슬픔으로 터진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슬픔은 망국의 슬픔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왕은 죽었지만, 그 슬픔이 왕과의 사랑을 깨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까닭에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붓는다. 고종의 뜻밖의 죽음으로 닥쳐온 망국이라는 새로운 슬픔에 충효와 불사이군의 유교적 맹세마저 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는 고종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주권의 회복이다. 

  한용운의 세계관은 왕이 조선이고 곧 주권이다. 그런데 왕인 고종이 죽으면서 조선이 무너지고 주권이 사라졌다. 하지만 슬픔에 빠져있지 않고 정신을 차려서 그 슬픔의 힘을 주권을 되찾는 새 희망의 정부박이에 들어 부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몸으로 실천했던 독립투사의 기백과 결기가 드러난다.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의 윤회를 믿는다. 그래서 이별은 만남을 예정하는 것이다. 왕은 죽었지만 그래서 조선의 주권도 사라졌지만, 결코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억누를 수 없는 한용운의 주권 회복의 열망이 죽어 침묵할 수밖에 없는 고종과 조선의 주권을 휩싸고 돈다.

  제목 「님의 침묵」이 의미하는 것이 죽어 침묵할 수밖에 없는 고종과 조선의 주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립투사 한용운의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가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돈다는 마지막 행이 눈물겹게 가슴을 흔든다. 조선의 주권 회복을 위한 강렬한 결기가 느껴진다.  이 시는 한용운의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의 통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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