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섭 Sep 20. 2022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해석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이 시는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본 뒤에 세부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 

  시를 구성하는 세 가지는 나룻배와 행인과 물이다. 3연 2행 “당신은 물만 건너면”이라는 진술로 나는 나룻배이고 당신은 나루와 나루 사이 물을 건너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물을 건너 주는 나룻배인 나에게 행인인 당신은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다. 오히려 흙발로 짓밟기까지 한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넌다고 한다. 희생이다. 

  여기서 한용운이 “안고”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표현은 나룻배에 ‘태우고’이다. 따라서 “안고”는 나와 행인의 관계가 일반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이다. 흙발로 짓밟아도 나룻배인 나에게 행인인 당신은 안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계는 2연 3행으로 더욱 또렷이 드러난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나룻배는 정해진 길로 다닌다. 나루터에서 건너편 나루터까지이다. 물론 그 물길이 깊은 곳도 얕은 곳도 또한 급한 여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날마다 반복적으로 다니는 길이어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터이다. 그래서 위 진술이 일상적으로 건너다니는 물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당신을 안고 쉽든 어렵든 위험하든 망설이지 않고 물을 건넌다는 것이다. 이는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나는 실행한다는 의미이다. 절대적인 복종이고 헌신이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오직 당신 하나만을 위한 나룻배라는 의미이다. 

  종합하면, 당신이 나를 흙발로 짓밟아도 나는 당신을 안아 주저하지 않고 당신이 원하는 일을 실행하는 희생과 복종과 헌신의 나룻배이다. 또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아니 오시는 당신을 기다리는 지극한 충절을 받친다. 

  이러한 희생과 복종과 헌신 그리고 지극한 충절을 받치는 관계는 유교 정신인 충효와 불사이군의 왕과 신하 또는 왕과 백성의 관계이다. 따라서 나는 신하 또는 백성이고 당신은 왕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버리고 임진나루에서 화석정에 불을 질러 어둠을 밝힌 뒤, 배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 의주로 도망치던 선조의 모습과 강제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제국주의 일본에 빼앗긴 고종이 겹쳐져 떠오른다. 

  앞서 살폈듯이 나는 백성이다. 행인은 왕이다. 한용운의 유교적 국가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왕에 충성하는 신하이자 백성의 모습이다. 27세에 정식으로 출가하기 전까지 유학자이기도 했던 한용운의 국가관은 왕이 국가이며 곧 주권이다. 고종 16년인 1879년 몰락한 사대부 가문에 태어나 6세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찬이 자자했다고 하는 한용운이다.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백성인 나를 흙발로 짓밟더라도 나는 한결같은 충절의 마음으로 왕을 안고 물을 건넌다. 한용운은 “안고”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당신의 정체가 나룻배인 내가 받들어 안아야 하는 왕임을 알려준다.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왕을 위해 희생하고 복종하고 헌신하고 또 충성하는 충효와 불사이군 유교 정신의 신하이고 백성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왕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왕을 기다리고 있다. 나룻배인 나에게 행인은 오직 당신 즉 조선의 왕 하나뿐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나의 지극한 불사이군 충절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리는 존재이다. 이는 백성을 보살피지 않는 왕이라는 의미이다. 강제 한일합방으로 제국주의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고종이 떠오른다. 한용운은 충청도 사투리인 감탄사 “그려”를 사용해서 왕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며 강조한다. 

  그러나 내 마음은 변하지 않고 오직 왕이 오실 줄만 알고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간다. 왕에 대한 지극하고도 절대적인 유교적 충절의 마음이다. 비록 백성을 보살피지 않고 떠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왕이라 하더라도 불사이군의 유교 정신으로 왕을 기다린다. 반드시 돌아오라는 간절한 열망의 기다림이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수미쌍관으로 반복해서 나는 나룻배이고 왕을 행인이라고 강조한다. 나를 흙발로 짓밟을지라도, 나는 왕의 나룻배가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한용운의 유교적 국가관과 세계관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강제 한일합방으로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배라는 망국의 절망을 남긴 채, 백성을 흙발로 짓밟고 떠나버린 왕이지만, 나는 불사이군 충절의 백성으로 조선의 왕과 주권이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용운 알 수 없어요 해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