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섭 Oct 24. 2023

백석과 조만식과 김일성과 갈매나무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해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전문-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다. 이 시 역시 처참한 한국 현대시 100년의 오독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많은 학자 평론가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라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 비극이다. “인간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 냈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시 평론은 명확한 시 해석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과인지 배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과 맛에 대해 그리고 배 맛에 대해 평론하는 것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시는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예술, 문학, 또는 시를 명확하게 해석하는 것은, 작품의 심오한 의미를 협소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예술이든 문학이든 시든 작품의 심오함은 명확한 해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 심오함이라는 것은, 작가의 정신의 깊이이고 심대한 세계관이고 독창적인 예술 표현 방식 위에 놓인 것일 터이니 말이다.   

  

  이 시는 반성문이고 자아비판서다. 백석의 생각과 의도를 따라가 보자. 이것은 결국 시의 논리구조와 언어사용 방식과 단어 등을 살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백석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신의주을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해 10월에 오산학교 스승인 조만식선생의 부름을 받아 평양으로 간다. 조만식선생은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배시절 “물산장려운동” 등을 펼치며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였다. 백석은 조만식선생의 비서가 되어, 김일성장군 환영회에 참석해서 러시아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조만식선생은 소련군 당국이 만든 북조선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되지만, 이를 거절하고 1945년 11월 3일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여 당수가 된다. 이때 백석은 조만식선생의 비서였고 백선엽 역시 비서였다고 한다. 조만식선생을 북한 공산당에 걸림돌이라고 판단한 소련군 당국과 김일성에 의해서 조만식선생은 다음 해인 1946년 1월 5일 연금을 당한다. 사실상의 숙청이었다. 그러나 이미 낌새을 알아차리고 1945년 12월경 월남한 백선엽과는 달리 백석은 여전히 조만식선생의 비서로 남아있었다. 따라서 1946년 한설야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북조선예술총동맹에 백석은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47년 역시 한설야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때부터 백석은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데  매진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숙청당한 조선민주당 당수 조만식선생(이후 6.25 전쟁 직전 총살당함)의 비서였던 백석의 신변에도 어떤 제재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또 다른 기록에는 백석이 조만식선생의 비서를 그만두고 러시아 문학 작품 번역에 매진하면서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백석이 조만식선생의 비서를 그만둔 시점과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으로 참여한 것, 그리고 러시아 문학 작품 번역에 매진한 것이 시기적으로 겹친다. 따라서 백석은 아마도 1947년 조만식선생 비서를 그만두고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한설야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학예술총동맹에 참여해서 전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이 무렵을 전후해서 쓴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의 내용은 북한을 점령한 공산정권의 수뇌에게 자신이 조선민주당 당수 조만식선생의 비서였던 과거를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다시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려달라며 용서를 비는 내용이다. 그리고 공산당의 이념과 공산당 권력이 시키는 대로 살겠다고 맹세하는 시다. 

  1948년 10월 『학풍』 창간호에 발표되었다.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일반적인 시에서 볼 수 없는 많은 특징들이 있다. 

  제목이 편지 발신지를 드러내는 주소다. 따라서 당연히 화자인 나는 백석 자신이면서 편지 발신자다. 이는 동시에 이 시 안에 편지 수신지와 수신자가 들어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백석이 누구에겐가 보내는 편지인 것이다.     

  이 시는 다섯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안에는 무려 37개의 쉼표가 찍혀있다. 백석은 무슨 생각으로 아니 무슨 의도로 32행의 시를 다섯 개의 문장으로 나누고 그 안에 37개의 쉼표를 찍었을까? 시인 백석을 존중하고 또 그의 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의 생각과 의도를 따라 가보자.  

    

  1 다섯 개의 문장 첫머리는      

  (1). 어느 사이에 (2). 바로 날도 저물어서 (3). 이리하여 (4).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5).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2. 이 다섯 개의 문장 첫머리에 마지막 문장을 덧붙여, 백석이 의도하는 논리구조를 살피면,


  <1>. 어느 사이에 -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첫 번째 문장에 백석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어느 사이에”이다. 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고 그 결과 아내와 집과 가족을 잃고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를 끝에 헤매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느 사이에”라는 진술은 뒤에 “어리석음”과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라는 진술의 논리구조로 이어진다. 

    

  <2>. 바로 날도 저물어서 -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두 번째 문장은 어떤 사건으로 몰락해버린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절박하게 구구절절 널어놓는 밑자락 깔기 또는 추임새다.

     

  <3>. 이리하여 -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문장에서 사건의 발생과 몰락, 두 번째 문장에서 헌 삿을 깐 방에 세 들었다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더해서 세 번째 문장에서는 절박한 삶을 구구절절 나열하여 호소하는 추임새 속에 자신의 어리석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드러내기 시작한다. 즉 내 슬픔의 원인은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고 그 어리석음은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라는 것임을 알려준다. 

  정당은 정치결사체다. 정치적인 뜻과 생각을 같이하는 정치집단이다. 때문에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는 백석이 조선민주당 당수인 조만식선생의 비서로 정치에 참여했던 것을 후회한다는 의미다. 이는 앞서 어떤 사건은 조만식선생의 감금 즉 숙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첫 문장 첫머리를 조만식선생의 비서로 정치에 참여했던 것이 어리석음이었음을 몰랐다고 하는 “어느 사이에”라는 변명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4>.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네 번째 문장에서 드디어 백석이 느끼는 현실적 공포를 드러낸다. 내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공포를 느낀다. 이는 조선민주당 당수인 조만식선생의 비서로 정치에 참여했던 일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이고 어리석음이었음을 깨닫고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5.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다섯 번째 문장이다. “그러나”로 시작되는 이 문장은 백석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담아놓은 절절한 내용이다. 

  백석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맹세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여기서 새로운 삶이라는 것은 조만식선생이 당수였던 조선민주당의 정치가 아닌 소련군과 김일성이 내놓는 공산당의 정치 아래 살겠다는 맹세와 다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정치와는 결별하겠다는 결심과 선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라는 진술을 한다.     

  ‘내 뜻이며 힘’은 내 생각과 의지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크고 높은 뜻과 힘은 국가의 이념이고 국가 권력이다. 즉 자신의 뜻과 힘이었던 조선민주당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그고 높은 뜻과 힘인, 소련군 당국과 김일성 공산당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전향을 선언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특히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이라는 진술로 공산당에 굴복 전향했음을 강조해서 알리고 있다. 이는 백석이 느끼는 죽음과 다르지 않은 현실의 공포 때문이라는 것을 다음 진술로 드러낸다.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 것은 북한 공산당의 감시와 위협을 의미한다. 이때 백석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살아야겠다고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라는 진술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면서 한번 더 맹세한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은 마지막 행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이었던 정치와 결별하겠다는 결심과 선언을 갈매나무로 강조하면서 시를 마무리한다.     

  갈매나무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무다. 흔히 시에 등장하는 나무는 특징이 있다. 사계절 푸르다든지, 수형이 웅장하다든지, 꽃이 아름답거나 향기가 특별하다든가 하는 등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갈매나무는 볼품없는 나무다. 군락을 이루어 사는 나무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작은 가지들이 가시로 변하는 것이다. 가시나무는 아니지만 가지가 변한 가시 때문에 오히려 가시나무보다 더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나무다. 그래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나무다. 스치기만 해도 피가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갈매나무를 백석이 생각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가시나무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가시나무보다 더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갈매나무처럼 살겠다는 것이다. 이는 집단이 아닌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혼자의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이고, 정치집단인 정당에서 정치활동을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청산하고 정치에서 영원히 멀어져 다시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정치를 하지 않을 테니 살려달라는 애원인 것이다.  

      

  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반성문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자아 비판서다. 백석은 너무나 절실해서 다섯 개 문장, 연 구분이 없는 32행의 시에서 자신의 반성이 얼마나 진실한 것이고 또 절박하고 간절한 것인지를 드러내야 하는 목적 때문에 무려, 37개의 쉼표를 찍어 강조하고 있다. 

  편지 수신자가 자신의 자아 비판서를 읽고 살려주기를 애절하게 간청하는 방식으로 문장의 논리구조를 짜고 작동시키고 있다. 

     

  이것이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다. 백석의 시 중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서정시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반성문이고 자아 비판서다. 처참한 한국 현대시 100년의 오독은 언제 끝나게 될까! 암울하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일본 핵 오염수 방류와 문학과 시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