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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향 Oct 29. 2023

노을

더위에 지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밥을 먹고도 헛헛할 때가 있다     


부엌창에 걸린 해에서 단물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붉은 해가 넘어가기 전에 서둘러 꼭지째 뚝 따왔다

다디단 냄새가 났다     


내 속에 단물을 채워줄 노을을 반으로 잘랐다

그런데 웬일일까

길어진 한여름을 따왔는데 

속이 하얗다

저녁의 불빛을 비춰 봐도 풋냄새가 흘러나왔다       


어느 외로운 사람이 씨를 뿌렸을까    

 

설익은 속을 들여다보다 단맛이 풍기는 한 사람을 생각한다

저 노을도 멀리 가 있는 한 사람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저녁 먹자고 하면 빛의 속도로 와서 다 비우는 사람 

입술 안쪽이 자주 헐어 하얗게 부풀어 오르는 사람

여름내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덜 익었다고 다시 걸어둘 수도 없는 이 노을을 

마음에 묻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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