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네 부부와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결혼한 지 이제 5개월 차인 신상 부부이자 신혼이다. 1년에 고작 두, 세 번 보는 게 전부지만 이들을 만나기 전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있었다. 신혼이란 단어가 주는 설렘이랄까. 내 신혼 때를 떠올리면 공식 유부녀가 되어서 얼떨떨하기도 했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임자 있는 몸이라고 티 내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크고 작은 모든 고민까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고 별거 아닌 거에 목숨까지 걸고 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과 보낸 가장 알콩달콩한 시간이었다. 남동생과 올케도 그럴까?
드디어 만났다. 예상대로 남동생은 인생 최대치의 몸무게를 하루하루 갱신 중이었고, 올케는 오히려 더 말라 있었다. 그것만으로 신혼생활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동생은 게으르고, 올케만 부지런할 것 같았는데 역시나였다. 나는 남동생의 건강이 우려가 되었다. 내가 같이 사는 남자는 요즘 너무 부지런해서 살이 빠지고 있는데, 동생은 누워만 있어서 살도 쪘단다. 둘 중 뭐가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살이 10kg 이상 쪘다는 건 건강에 직접적인 적신호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워낙 잔소리를 듣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올케는 속시원히 할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순간 내가 나설 차례라는 직감이 들었다. 맥주 한 모금에 안주 대신 잔소리를 해댔다. 운동을 해야 한다, 집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등 돌려 까기로 살 좀 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남동생은 옆에 매형이 있어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단 발끈하진 않고,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러다 올케가 내 말에 속 시원해하거나, 내 말을 거들면 이상하게 분노했다. “네가 요즘 잔소리가 늘었는데 계속 말할수록 아직도 더 찔 살이 있다는 걸 보여줄 거야” 올케는 어이없어하다가 서운해하다가를 반복하며 본인의 진심을 말하려고 노력했다. 중요한 건 올케의 결론은 언제나 그래도 동생이 너무 좋다는 거였다.
(올케) 나는 네가 걱정돼서 그래
내가 더 집안일을 더 해서 말하는 게 아니야
예전엔 네가 얼마나 잘생겼었는데
지금도 살이 쪄서 이목구비가 귀엽긴 하지만.
건강도 걱정되는데, 잘생겼던 남동생이 온데 간데없다며.. 그래도 살쪘는데 지금의 이목구비는 너무 귀엽단다. ‘우웩’이라고 속으로 백번 읊조렸지만 내뱉진 않았다. 나는 예전의 남동생이 그리워서 하는 형식적인 잔소리였고, 올케는 진짜 남동생을 사랑해서 하는 잔소리였다. 올케가 쓴 꽤 단단한 콩깍지 렌즈는 쉽게 벗겨질 것 같진 않았다. 아직까진 집안일을 다 맡아서 하는 게 괜찮다고 하는데, 남동생의 이목구비가 살에 다 파묻혀야 제대로 현실을 보지 않을까? 어쨋든 둘이 괜찮다는데 별 수 없었다. 나도 기경험자로서 ‘신혼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임을 안다. 신혼은 남들의 시선과 이해보단 오롯이 둘만 행복하면 되는 특권이니까.
이어진 대화의 주제는 신혼부부의 가전제품이었다. 벌써 7년 전이지만, 우리 때는 건조기, 공기청정기, 드레서 등이 필수는 아니었다. 결혼 입주 때 사지 않았던 가전제품을 차후에 구매하기 위해선 부부간 합의와 큰 의사결정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에겐 없는 다양한 가전제품을 가진 올케에게 사용후기를 물어보았다. 내 남편이 솔깃하길 바라는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남동생네는 맞벌이인 부부인데 올케는 업무상 교대근무를 해야 해 잠을 자는 시간이 불규칙 한 편이디. 그래서 신혼치고는 남동생과 보내는 시간도 적고, 설거지 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단다. 거기다 퇴근 후 남동생은 피곤하면 잠이 들어버리고, 자기 먹은 것조차 설거지를 안 해서 올케가 속상해하는 것도 신경이 쓰여 최근에 식기세척기를 샀다고 한다. 결국 가전제품 하나 더 들여놓는것도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라니. 이게 바로 신혼이구나!
이제까지 본인들이 써본 가전제품을 다 세세하게 이야기했지만 그중 단연 일등이 식기세척기라고 만족스러워했다. 특히 고기 기름은 아무리 뜨거운 물로 씻어도 개운한 감이 없는데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잘 닦인다며 극찬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전 중에서 맞벌이에게 가장 유용한 가전제품이 식기세척기라고 했다. 말수가 없는 편인 남동생도 갑자기 건조기도 좋고, 드레서도 다 좋지만 실용성 갑은 식기세척기라며 누나랑 매형이 꼭 사용해보길 바란다고 추천을 했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내 맘을 읽고 잘해주는 남동생과 올케가 기특했다. 그때 남편의 표정은 더 가관이었다. 이미 올케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듯했다. 특히 남동생이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는다는 이유는 경솔하고 즉흥적인 구매로 비쳐줬을 거다. 식기세척기 전용 세제와 평균 60분이 걸리는 세척시간 역시 탐탁지 않은지 못마땅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말로 나와 올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남편) 여기에 10분짜리 식세기가 있는데
우리는 필요 없어요.
남편은 내 손을 10분 식기세척기라 표현하며 유머로 넘어가려 했다. 올케 역시 결코 지지 않았다. 10분과 60분의 차이가 바로 기름 한 톨 남아있지 않는 깨끗함의 차이라며, 사람이 60분 동안 어떻게 설거지만 정교하게 할 수 있겠냐며, 사람 입에 들어가는 식기들은 공들여 씻는 게 정답이라며, 결국 세척에 능한 기기를 사용하면 시간도 아끼고 설겆이를 누가 해야 하는지 감정 소모도 줄일 수 있다고. 일단 올케의 승!
비록 식세기 구매로 이어지진 않을지라도 통쾌했다. 올케와 남편의 미묘한 감정의 대립은 패기넘치는 신입사원과 자기 방식만 맞다고 우기는 꼰대를 보는 것 같았다. 얌전할줄 알았던 올케의 소신 있는 모습과 남에게 싫은 내색 안 하는 남편의 고지식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남편이 말을 할수록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생각났다. 우리집 병풍 식세기가.
(나) 우리 집에 식세기가 있긴 한데..
남편도 잊고 있었던 우리 집의 애물단지였다. 작년에 이사올때부터 매립되어있었는 데 사용을 해 봐야겠단 결심보단 중고다 보니 사용감이 있어 고장이 날까하는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한번도 전원 버튼을 눌러본 적이 없었고 남편 역시 괜히 수리비만 더 나온다며 없는 것 마냥 지내왔다. 올케 말로는 식세기의 성능은 연식에 따른 큰 차이는 없고, 본인도 비싸지 않은 중저가의 식세기를 사용한다며 우선 살균제로 소독부터 해보라고 권유했다.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검색해보니 우리 집 식세기 모델이 아직도 판매 중이었고, 작년에 올라온 후기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고장 여부만 확인하면 되겠다 싶어 맘먹은 김에 구연산과 베이킹소다를 꺼내 세척을 했다. 세척 도중에 에러라는 알람 때문에 포기할 뻔했지만, 다행히 식세기와 연결 왼 수도 밸브가 잠겨있다는 의미였다. 밸브를 열자마자 세척이 시작됐다. 의미 있는 60분의 기다림이 끝났다. 이 정도 소음과 시간은 다른 일반 식기세척기와 동일했다. 얼떨결에 공짜 가전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남편 역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해 생글생글 웃고 있었고 어느새 식기세척기 전용 세제를 검색하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그동안 쫄보같이 지냈던지, 고작 4살 차이 나는 올케인데 한 10년 뒤쳐지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오늘부터 나는 식기세척기를 쓰는 여자다.
오늘 동생네를 만난 우리는 꼰대 아줌마랑 꼰대 아저씨였다. 생각해보면 동생보다 고작 몇 년 결혼을 일찍 했다는 이유로 우리가 미리 경험했던 것만 정답인 것처럼 강요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4살 어린 동생네 커플은 시간에 대해 민감하고, 효율적인 것을 우선시하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편한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솔직했고 그들의 결정에 자신감이 넘쳤다. 행복을 위해선 무조건 아끼고 안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나름 우리 부부의 사는 방식에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고집과 아집이라는 것을꼰대 부부인 우리만 몰랐나 보다. 오늘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식기세척기가 아니라, 똑 부러지는 신혼부부였다. 식기세척기는 단 한 번뿐인 신혼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수단이며 그들의 신혼생활을 더 돈독하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나에게 식기세척기는 그저 올케 덕분에 공짜로 생겨 밥그릇을 세척하는 용도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