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엄마를 기억하는 일은 힘든 일이다

엄마가 떠났다

얼마 전 나의 딸의 생일이었다. 11년 만에 엄마의 생일축하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 않았다. 서른이 다 돼 가는 나이에 나는 공부를 하겠다며 한국을 떠나 중국에 왔다. 엄마는 나를 눈물로 보냈다.

그 후로 나는 이곳에 정착해서 살아갔다. 이곳에서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나아 가정을 이루었다. 직장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자주 가지도 못했다. 게다 코로나와 인하여 3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를 못 본채 지내기도 했다.


나는 이곳에서 몇 번의 유산을 경험했었고, 병원에서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자궁을 긁어내는 수술을 두 번 겪었으며, 입원 중 겪었던 불쾌함 때문에 한국 출산을 택했었다. 출산 예정일 두 달 전에 들어가 엄마가 해 주는 밥을 잘 먹고, 그곳에서 출산을 했다.


10월 20일, 그날 아침 나는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침대에 누워 때를 기다렸다. 밥 먹고 자기를 반복하며 오후 3:30에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갔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남편 때문에 혹은 덕분에, 엄마는 나와 함께 분만실에 들어갔고 나의 출산 과정을 함께 했다. 통증이 올 때마다 안간힘을 쓰는 나를 보며 “아프면 소리 질러”라고 했던 엄마의 그 말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전 과정 속에 엄마는 함께 있었다.


그리고 엄마 집에서 두 달을 더 지낸 후 상하이로 돌아왔다. 출산 전 두 달, 출산 후 두 달, 그 네 달 동안 엄마는 나에게 매 끼니를 차려주며 설거지도 못 하게 했고, 나는 아마 그것을 잘 누렸던 것 같다. 엄마와 함께 보낸 그 네 달, 남편보다 엄마가 더 소중했던 출산 후 두 달, 그 후 상해에 돌아와서 갑자기 닥친 우울함에 힘들어 울기도 했었다.


매해 엄마는 잊지 않고 10월 20일 아침이면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의 딸, 엄마의 손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였다. 또 매해 아이의 통장에 생일선물이라며 큰돈을 입금해 줬다.


근데 11번째 10월 20일에는 엄마의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엄마는 왜 메시지를 못 보냈는가. 엄마는 왜 그런 상황에 있는가. 이런 알토당도 않은 생각을 하면서. 엄마가 그동안 그 10월 20일을 챙기기 위해, 그날을 달력에 적고 기억하며, 그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축하 메시지를 적으러 노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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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이번 생일에는 문자 안 보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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