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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12. 2022

싱글, 안 좋아요 (2) - 너의 머리와 손이 필요해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면 그 일에 재능이 있든 없든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수제비 식당 40년 한 사장님이 밀가루 반죽의 달인이 되는 것처럼.

싱글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혼자 별 거 다 하고 잘 산다’고 감탄하는데, 혼자니까 어쩔 수 없이 혼자 이것저것 필요한 걸 하고 살다 보니 익숙해진 것뿐이다. 무작정 둘이 될 때를 기다릴 순 없으니까. (슬프네)      


▶ 너무 묻고 싶은 말…“어떻게 생각해?”

그럼에도 낯선 곳에서 혼자사는 건 영 익숙해지기 힘들다. 매일, 아니 매 순간 궁금한 것, 확신이 안 서는 것, 이해가 안 되는 것,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난감한 것, 이것과 저것 중에 어떤 게 더 나은지 선택하는 것 등의 문제에 부딪히는데 그때마다 늘 혼자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야말로 누군가 함께 공통의 문제를 생각하고 풀어나갈 중지를 모아야 하는데….     


하다못해 한국에서 차를 타고 익숙한 장소에 갈 때도 ‘이 길이 덜 막힐까, 저 길이 덜 막힐까’를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경우가 있는데, 미국에선 그야말로 내 생각이나 판단에 대해 얘기해 줄 로봇이라도 옆에 하나 두고 싶은 심정이다. 백지장도 만들면 낫다는데, 사람의 아이큐가 120이라면 나의 120에 또 다른 120짜리 아이큐가 하나 더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할 때가 많다. 미국에 연수 온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부 단위로 오는데, 여러 가지 힘든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야 비슷하겠지만 함께 상의하고 결정할(결과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다) 상대가 있다는 점이 가장 부러웠다.     

▶ 너무 하고 싶은 말…“잠깐 갔다올게”

또 하나의 걸림돌은 여행이다. 나홀로 여행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장점은 당연히 내 마음대로 여행 동선을 짜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자유롭다는 것. 나의 경우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을 이런저런 수다로 낭비하지 않고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나홀로 여행’의 큰 매력이다.     


단점은 누구나 짐작하듯 맛있는 것, 멋진 것을 함께 하며 감동과 기쁨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 때때로 외롭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이 좋은 걸 혼자 보다니. 이런 걸 함께 겪는다면 누구라도 더 유대감이 깊어질 텐데. 아쉬울 만하다.      


혼자하는 여행이야 많이 해봐서 너무나 익숙하다. 문제는 미국에 연수와서는 직장에 매여있던 한국에서보다 낯선 곳에 가는 빈도가 늘어나고 기간도 길어졌다는 데 있다. 말도 완벽히 통하지 않는 곳에서 혹시 안내방송이라도 놓칠까, 외국인이라고 사기치진 않을까 늘 긴장하고 과도한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소한 문제지만 여행용 가방이나 짐이 큰 경우가 많은데 행여나 도둑맞을까 봐 화장실에 갈 때는 물론, 물어볼 게 있어 잠깐 이동할 때조차 짐을 질질 끌고 다녀야 하는 것도 불편하지 그지없다. 실제 미국에선 카페나 식당에서 소지품을 두고 자리를 비우면 도둑맞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상황인데, 그렇게 도둑맞아도 미국은 기본적으로 ‘너의 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건 니 탓이다’란 룰(?)이 뚜렷하다.      

요즘엔 나라를 가리지 않고 1인 가구가 많아졌고 결혼하지 않은 싱글들도 늘면서 혼자 뭔가 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두 사람’ 또는 ‘가족 단위’에 맞춰진 것들이 많다.

일례로 해변에 놓인 선베드만 해도 2인용 아니면 4인용이다. 플라스틱으로 이어 붙여 만든 것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최근 여행에서도 혼자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싶어(사실 싱글이면 해변에서 이것 외엔 할 게 마땅치 않긴하다) 일찌감치 서둘러 선베드를 맡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웬 흑인 부부가 오더니 옆에 자리가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남편은 부인과 번갈아가며 내 옆 자리에 앉겠다며 짐을 마구 푸는 거였다. 그렇게 나와버리니 불편해서 도리가 없었다. 그냥 두 분이 앉으라고 짐을 바리바리 싸서 어렵게 맡은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와 비슷하게 인기 많은 장소일수록 혼자 식탁이나 특정 구역을 차지하는 게 민망하고 민폐를 끼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조금 감정적인 이유일 수 있지만 둘이 하는 게 단연코 ‘적합한’ 여행지도 있다. 하와이나 괌 같은 이른바 낭만적인 풍경에 해양스포츠 등으로 유명한 장소라든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모든 걸 내려놓고 동심으로 돌아가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해야(?) 제 맛인 테마파크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이런 여행지를 혼자 간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대도시의 뮤지엄에 혼자가는 것과 하와이에 혼자가는 것은…수많은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학교 방학기간이다. 나는 과장없이 열두어번, 과장해서 백번은 고심한 끝에 이 소중한 기간을 놓칠 수 없어 좋아하는 테마마크에 혼자 가기로 했다. ‘우와’ 감탄사를 내뱉으며 머리띠도 하고 막대사탕 같은 것도 사들고 소싯적에 외우던 애니메이션 노래도 부르고, 옆자리에 누가 앉든 혼자 앉든 푸춰 핸접하며 놀이기구도 타고, 길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인형 탈 쓴 직원들하고 사진도 찍어볼 작정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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