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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21. 2022

해밀턴이 흑인인 줄 알았습니다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미국에 연수 오기 전 이 나라 역사에 대한 책을 읽고 왔다. 내가 1년 간 살 나라를 좀 알고 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도 결국 기억하는 건 미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큰 배경과 링컨같이 몇몇 유명한 대통령들 뿐이다. 외국인이 세종대왕은 알아도 정약용이나 권율 장군은 들어도 잘 기억 못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랄까.     


반면 워낙 공연을 좋아해서 뉴욕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뮤지컬은 꽤 알고 있는데, 그중엔 18세기 중반 미국 건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해밀턴’도 있다. 2015년 초연 이후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로 돈도 많이 벌어들이고, 퓰리처상까지 받은 화제작이다. 랩·힙합·재즈 등이 섞인 뮤지컬 노래들이 귀에 착착 붙는데다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있어서 보는 관객도 순수한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지금 이렇게 해밀턴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주인공인 알렉산더 해밀턴(1755/1757~1804)이란 인물이 미국 건국시대에 활약한 흑인 인물인 줄 알았다. 그 당시만 해도 흑인 정치인이 워낙 드문 케이스라서 이렇게 뮤지컬로까지 만들어졌나 보다 마음대로 짐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본 해밀턴 역을 맡은 배우는 늘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해밀턴은 엄연히 백인이다. 그 역할을 주로 흑인 배우가 연기한 것뿐이다. 나는 그렇게 유명한 백인을 흑인 배우가 재현할 일은 없다고 단정해 버린 거다. 얼마나 편견과 선입견에 갇혀있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금기시되는 행동과 인식이다. 소위 ‘주류(main stream)’인 백인들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느냐 아니냐 와는 별개로 인종차별은 매우 비열한 것, 인종 차별하는 인간은 매우 후지고 부끄럽고 덜 성숙한 인간…그런 교육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정부에서 전방위적으로 오랫동안 이뤄져 왔다.      


노스캐롤라이나만 해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영어가 좀 어눌해도 ‘겉으로는’ 절대 비웃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테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천사같이 웃어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백인 여자는 처음부터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또 말하는 게 좀 부족해도 영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언어 능력을 이유로 고용이나 학업 등의 기회를 박탈하는 걸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나도 미국에 와서 보험같이 돈이 걸린 중요한 계약을 처리하거나 문서에 대해 전화로 문의할 때, 자존심을 접고 “미안한데 내가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니까 최대한 천천히 말해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알았어. 괜찮아”라며 친절하게 응대해줬다. (십중팔구 내가 돈 내는 사람이니 그랬을 테지만)     

알렉산더 해밀턴 초상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워싱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해밀턴 케이스를 겪어보니 정작 미국에서 외국인이자 마이너리티인 내가 ‘인종’이라는 틀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디즈니가 ‘인어공주’ 영화의 주인공을 흑인으로 지정했을 때 솔직히 너무 싫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안데르센 동화책과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인어공주 그림은 예쁜 백인이란 말이다. 왜 굳이 동심(?)을 깨려는 걸까. 최근엔 ‘미녀와 야수’ 영화의 주인공도 흑인 배우가 맡는다고 했다. 또 불만이었다. 프랑스 등 유럽 전반에 걸쳐 전해지는 이 동화에서 주인공 벨과 왕자는 늘 백인이었다. 그런데 왜 또 흑인 배우란 말인가. 나는 불만의 원인을 ‘원작을 해치지 맙시다’라고 둘러댔지만, 무의식적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건 백인이다’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최근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한 방 맞았다. 프랑스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며 동생과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저게 무슨 프랑스 팀이야? 완전 흑인 국가 연합팀인데?”라고 별 뜻 없이 말하자, 독일에서 수년간 살고 있는 동생은 “유럽에선 인종을 따지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아무 의미없다”고 지적했다. 그랬다. 영국·프랑스·독일 국민은 백인, 흑인은 아프리카 대륙 국가 국민…이런 선입견이 내 머릿속에 딱 자리 잡고 있었던 거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서의 생활은 ‘정말 여러 인종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구나’란 사실을 체감하고, 구닥다리인 내 인식을 헐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례로 한 달 전쯤 미국 남쪽의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갔을 때는 아예 영어를 못 하고(일부러 안 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스페인어만 쓰는 사람도 많았다. 식당이나 호텔 등에서 직원들끼리 동남아시아 쪽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도 흔했다.        


여기에 새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알게 모르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 콘텐츠엔 매우 다양한 언어가 등장한다. 영어와 일본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독일어·프랑스어 영화들이 아주 많다. 그 외에 이탈리아·인도·체코·헝가리·중국과 아랍 쪽 언어, 스페인과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 쓰이는 바스크어까지 접할 수 있다.     


등장하는 인종도 자유롭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브리저튼’만 해도 영국 런던이 배경이지만 최고 권력자인 여왕, 남자 주인공(헤이스팅스 공작),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케이트 샤르마)을 비롯한 많은 주요 인물들이 흑인과 아시안 등 유색인종이다. 무도회나 갤러리·공연장·공원 등 화면 속 장소 어디든 유색인종들이 섞여있다. 역사적으로 19세기 영국이 정말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논란이 많을 거다. 나도 처음엔 매우 어색했는데,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쩌면 ‘예쁜 드레스와 멋진 신사복을 입은 영국 드라마의 로맨틱한 주인공들은 백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건 자꾸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많이, 자주 등장하는 콘텐츠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그런 모습들이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려니’하며 별로 의식하지 않게 됐다. 계속 반복적으로 비슷한 설정에 노출돼다보니 적응과 교육이 된 거다. 사실 이런 무덤덤한 상태야말로 진짜 차별이 없는 바람직한 상태가 아닌가 싶다. 어떤 대상을 식별하고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란 인식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말이다. 글로벌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포용성을 키우는 효과를 낸 셈이다.


내가 진실로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해밀턴이든 인어공주든 A란 배우, B란 배우가 맡는 그 자체를 가지고 기대된다 또는 별로다라고 생각했을 거다. 배우마다 연기 스타일이 다 다르니까.

하지만 나는 그 배우가 백인·아시아인·흑인이란 것부터 식별하고 그 역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느껴 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호불호가 꽤 정당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인상착의를 따져가며 용의자를 찾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앞에 걸어오는 사람이 흑인인지, 아시안처럼 생겼는지, 백인인지 머리에서 인식할 필요가 없다. 그냥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거다.

     

살아보니(인생 선배님들껜 오만한 표현 죄송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나는 정말 상식적인 사람이야’라고 철썩같이 확신하는 일인 것 같다. 연말, 이민자들이 세운 넓고 다양한 나라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나만의 기준과 인식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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