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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Oct 30. 2022

나의 퇴사 이야기

누구나의 퇴사 이야기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정이 불행한 이유는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회사에도 적용시킨 다면 참으로 맞아떨어지게 될 것이다. 행복한 회사는 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회사는 이 세상에 너무 많고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도 각자 너무 나도 기구 한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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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승 이직을 하거나 퇴사를 결정하는 지인들이 많아졌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많이 입사했으니 많이 이직하고 퇴사하는 것뿐. 내가 태어난 세대는 어쩌다 보니 베이비 붐 세대였고, 어쩌다 보니 그로 인해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경쟁이 싫다고 몸부림쳐봐도 공급은 적고 수요는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항상 간절하게 모든 것을 원해야만 했다. 내가 살았던 안산은 비 평준화 지역이었다. 고등학교 선택부터 치열한 눈치 싸움을 거쳐야만 했다.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면 대학교 때까지 삐끗하고 대학교를 삐끗하면 인생 전체가 망가진다며 주변에서 겁을 줬다. 잔뜩 겁을 먹은 나는 소심하게 움직였다. 안전한 학교를 가기 위해 도보로 20분이 걸리는 학교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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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등학교를 가서는 또 경쟁이었다. 역대 최대 수능 인원으로 시험을 쳤던 2011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거쳐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핑크빛 미래가 기다릴 거라는 어른들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얼마나 치열하던지. 이번엔 학점을 따기 위해 경쟁했다. 문과는 무조건 학점은 높을수록 좋대. 고고익선 몰라? 1점이라도 올리기 위해 치열하게 시험을 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고 스펙에 고 학점인 시대가 도래했다. 취업 시장이 언제는 편안했는가. 내가 겪은 세대가 힘들다고 징징대고 싶은 맘은 없다. 그저 바늘구멍을 뚫는 심정으로 뚫어야 했던 사실을 말할 뿐이다. 널린 게 문과 고 학점, 고 스펙이라 이번엔 복수 전공을 안 하면 취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행정 학과인 나는 찬 밥 신세였다. 게다가 신입에게 왜 그리 경력을 묻는 질문은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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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제는 아무 곳이나 절 써주세요! 이러다 영영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매일매일 복권 번호를 들고 당첨 순간을 기다리는 맘으로 살았다. 결과는 언제나 낙첨이었다. 내가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과 같이 허황된 꿈을 바라는 걸까? 이렇게 존재 가치가 없었나? 싶은 순간에 첫 회사가 찾아왔다. 두 번의 면접과 인 적성 검사까지 해서 들어간 회사였다.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노동의 가치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닌 지 1년 9개월 만에 잔뜩 메말라 시들어 버린 꽃처럼 생기가 사라진 채로 말했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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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인이라면 내가 얼마나 회사에서 시달렸는지 이미 충분히 잘 알 것이다. 표면적으로 나의 퇴사 이유는 같이 일하던 부서의 과장님과 이사님 때문이었다. 과장님은 항상 책임을 면피하기 바쁜 사람으로 업무를 교묘하게 떠넘기는 것의 달인이었다. 그리고 슬쩍 슬쩍 드러내는 기분파의 면모까지 같이 일하는 사람을 충분히 메마르게 할 성질이었다. 이사님은 항상 술을 드시는지 곁에 있지 않아도 사무실에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결재를 받으러 다가가면 담배 냄새까지 더해져 기피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업무 시간에 코를 골며 주무신다는 점이다. 직책이 높아서 관리직에 있다고 잠을 잘 수 있다고 친다면 그것이 더 화나게 만드는 이유이다. 같은 월급을 받으면 모를까 그가 나의 월급의 3배는 넘게 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속에서 누구는 잠을 자고 누구는 일을 하고 돈을 받아 간다는 건 정말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 이외에도 말하자면 참 실소의 연속, 어처구니의 연속, 분노의 연속이 될 만한 드라마틱한 일이 참 많다. 회사에 다닌 이후로 오피스 물 드라마는 눈길도 주지 않을 정도이다. 이제 회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해리 포터에 가깝다. 저렇게 좋은 과장이, 저렇게 친절한 팀장이 존재하겠어? 같은 느낌.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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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서 표면적이라고 말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진짜 퇴사의 이유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었던가. 한창 장마철로 기억을 한다. 그날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팀에서 나이도 막내, 경력도 막내였던 나는 항상 짬 처리 같은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그날도 일과 시간에는 내가 맡은 일을 겨우 다 끝내고 전표를 순서대로 정리하고 있었다.


회사 건물에는 유일하게 나만 남았다. 살짝 열어 놓은 창문 틈 사이로 시원한 빗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비가 오면 같은 거리도 더 멀게 느껴질 텐데, 오늘도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간 다음에 야근 수당으로 경비 처리를 할까. 야근 수당으로 택시비를 경비 처리를 받으려면 9시 30분까지는 일해야 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막 9시를 넘기고 있었다.


순간 가슴속에서 울컥하면서 무언가가 차올랐다. 이번 주 내내 생각해 보니 빨라야 9시에 퇴근을 했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 왜 서러움을 느끼는가. 월급에 만족하지 못해서? 같이 일하는 사수가 배울 점이 없어서? 얼굴에 안면 마비가 올 정도로 야근이 잦아서? 이렇게 일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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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도저히 정답을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시험 당일까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시험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공부를 해야 시험에서 정답을 알지. 나에 대해 알아야 인생의 정답을 알지. 알지도 못한 채 덜컥 들어온 회사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 나는 이 일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를 써주는 것이 감사해 들어왔을 뿐. 나는 여기를 강력하게 원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마음의 실타래가 풀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날 밤 바로 가방을 쌌다. 신고 온 구두에 발을 넣었는데 하도 앉아있어 발이 퉁퉁 부어서 발이 들어 가질 않았다. 강남역 운동화 매장으로 가서 운동화를 구매했다. 신발을 갈아 신으며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발이 부어서 구두가 안 들어가.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개떡같이 말한 말을 동생은 찰떡같이 이해했다.

언니가 그만두고 싶으면 눈치 보지 말고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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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이후로 5개월을 더 지지부진하게 끌다가 그만두었다. 친구들에겐 그만둘 때 눈치 보지 말라고 응원하면서 나 역시 그만 두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역시 퇴사는 입사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마지막 면담 때까지 과장님은 정상이 아니었다.


사실 그만 두기 전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 업무 분장을 다시 해달라고 말씀드리고 받아들이면 계속 다녀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기분파 과장님이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 불을 끄고 나가버린 것이다. 그 행동이 도화선이 되어 그만두겠다고 말할 용기가 생기긴 했다. 그래?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회사가 여기 하나뿐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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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입사할 때는 산뜻한 마음이 되었다가 퇴사할 때는 모질고 험난한 마음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머문 자리도 아름다운 사람. 화장실에 항상 붙어있는 그런 아름다운 이별은 없는 걸까. 적어도 아직 까진 내 주변에서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일은 사랑할 순 있어도 회사까지는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아무튼 지금은 계약직이라 마음이 차라리 편하다. 계약이 만료되면 퇴사를 하는 시스템은 보다 더 산뜻하게 이별할 수 있는 게 가능하니까. 하지만 새로운 거처를 찾게 되면 또다시 고민하는 날이 오겠지.


전 회사와 이별을 통해서 그래도 습득한 것이 있다면, 어떤 퇴사를 할지도 중요하지만 퇴사할 시기에 퇴사를 결정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속박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는 길로 데려다줄 테니까. 그 용기를 언제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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