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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05. 2021

지나간 추억 그리고 누군가를 닮는다는 건 죄가 없잖아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들.



  시간을 미룬다고 내일이 오지 않는 게 아닌데.

 미뤄보려고 아등바등하다가 결국 아침에 피로감에 찌들어 굳이  써도  돈을 써가며 택시를 타고 출근을 했다.


  가는 길에 '  길은 직진을 해야  빠른데.. 네비대로 따라가시네' 하고 속으로 생각을 하고 말을  했는데, 목적지에 다다르자 기사님이  말을  하셨냐며 아까 직진하시라고 하시지. 그러길래 타이밍을 놓쳐서요 하하. 하고 멋쩍은 웃음만 흘리고 내렸다.


  해야  말을  하고 유야무야 이렇게 멋쩍게 넘길 때마다 어쩐지 아빠를 떠올린다.  진짜 닮기 싫은데. 아빠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아니던가. 바람을 피우고 사치를 부려 엄마를 힘들게 하던.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내게 나오는 걸까.   척하는  까지 포함해서 구차하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채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도착해서는 웬걸 그날 장사는  손님이 좌우한다는 식당의 기운이 내게도 퍼진 걸까.  오늘 행복할  없다는 듯이 들어가자마자 점심시간 손님들처럼 일이 밀려왔다.


  거래처의 요구를 생각 같아서는 내가 바로 들어주고 싶지만, 회사의 일이라는   결재라인도 타야 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적어도 나는) 나의 권한이냐 너의 권한이냐  미뤄 따지기도 하며,  와중에  부서의 협조도 받아야 하는 일인지라 그렇게  바퀴를 돌아서 결승지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특성상 직급체계가 없고 지사가 많고  인원도 다양하여 통일된 호칭으로 -님으로 보통 부르곤 한다. 그런데 메신저로 갑자기  부서에서 00 ~라는 호칭과 함께 이게 자료가 잘못된  같아용. 하고 귀여운 말투가 날아왔다. 잠깐 멈칫했다.


  뭐랄까  기분은 마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기분이랄까.. 아무튼 당황스러웠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고 자료를 다시 넘기고 끝이 났는데,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런    모드. 그냥 차라리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투가 기분 나빴다고 생각하고  감정을 인정해.   쿨한 척하면서 애써 부정하려 하는지.


  화가 나는 일에 애써 화가 나지 않은 척하거나 남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느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 그에게서 나온 나의 모습들  내가 싫어하는 모습들.


  하지만 하루는 감정을 정리하기도 전에  끝자락을 향해가고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어 오늘도 어김없이 집까지 걸어가는데 부쩍 추워진 바람에 발걸음이 무겁다. 봄이 오기까지는 아직 매서운 바람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바람에 그새 머리가 깨질  아프다.


  혹시나 하고 달력을 확인해보니 어쩐지 벌써 생리가 돌아오는 주간이다. 역시나 이 주간에는 편두통에 복통까지 겹쳐 앓아누울 수밖에 없다. 약을 먹고 바로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을 둘둘 싸매고 누우니

엄마가 생각이 났다. 이렇게 머리가 깨질듯한 아픔은 우리 엄마에게서 온 것. 항상 엄마도 머리를 자주 싸매고 누워있곤 했다. 편두통이 심해 약을 달고 살던 엄마의 모습을 지금 여기 내가 따라 하고 있다.

엄마는 없어도 누군가를 닮은 사람은 지금 여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닮은 모습들이 나올 때마다

내가 어디로부터 출발해서 지금 여기까지 있는지 다시금 추억할 수 있게 된다.


그건 평생의 축복일 수도 아니면 절망적인 불행일 수도 있다.


  머리를 싸매고 돌아눕다가 옆에 있는 lp장을 보며 생각한다. 아빠는 뭔가를 수집하기를  좋아했는데 lp, 카세트테이프, cd  뭐든 직접 사서 좋은 스피커와 기계로 듣는 즐거움을 좋아했다. 턴테이블부터 cd플레이어 까지. 그리고 영화도 직접 영화관에 가서 보는   좋아했다.


  그래서 사실 영화관은 아빠와 더 많이 갔다. 엄마는 아무리 가자고 해도 사람 많은 곳을 싫어했으니까. 갓 튀겨낸 팝콘을 들고 둘이서 심야영화를 봤던 시절도 있었다. 아빠가 안 쓰던 cd플레이어로 굳이 mp3가 유행하던 시절 반에서 혼자 cd를 사서 음악을 듣던 고집을 부렸던 것도 어쩌면, 아빠로 부터 받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lp를 좋아하는 것도. 영화는 여전히 영화관에 가서 보는 걸 좋아하는 것도. 대학시절 사진 동아리에 들었던 것도 엄마에게 굳이 혼나가며 입학 선물로 사줬던 dslr카메라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남보다도 못한 아빠는 어디에 있으며, 또 이렇게 남겨진 추억은 어디에 있을까.

아니 대체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추억까지 내가 미워하면 되는 걸까. 아님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여겨야 할까.




수많은 공백들을 지나왔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두자. 뭐 어쩌겠는가 지나갔으니. 새 추억이 쌓일 때까지. 그냥 가만히 두자. 가끔 비 내리고 해가 지고 먼지 날리게.

  그러다 또 가끔 내가 그녀 혹은 그를 닮을 날에 그랬었지 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추억이 추억인 게 죄는 아니니까. 사람이 밉더라도 내가 닮아버린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미 그로부터 출발해 버렸다. 하지만 다른 삶을 사니까 괜찮다. 그러니 죄가 없다.


  혹시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떠나버린 어떤 사람 때문에 너무 아파서 추억까지 미워하고 있다면 그리고 닮은 부분까지 부정하려 한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전해주고 싶다.


  그냥 가끔 누군가가 없어도 누군가와 함께 했었지 그 사실을 느끼는 날이 있을 뿐이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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