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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04. 2021

어두운 밤이 좋아

불안하게 흔들리는 밤이어도 나의 밤.


나는 잠에 예민한 편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잠자리가 바뀌면 잘 잠들지 못하고 잠에 드는 시간도 꽤 길게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늘 학창 시절에는 잠이 모자랐다. 새벽이 다 돼서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니까. 아침잠이 너무 부족한데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영단어를 외우고 바로 학교에서 영어 듣기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나마 대학생이 되면서는 시간표를 자유롭게 짤 수 있었기 때문에 모두 오후 수업으로 미뤄버리고 오전엔 늦잠을 잘까 싶었는데, 그마저도 왕복 3시간 학교를 통학으로 졸업 내내 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차피 아침에 일찍 눈을 떠야 했으므로 아침잠과의 사투는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 더 심각해졌던 거 같다. 매일 같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새벽에 출근을 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는지 결국엔 수면부족으로 안면마비까지 왔었다.

그리고 지금은 불면증과 약의 부작용으로 깊게 잠들지 못한다. 꿈속의 꿈. 꿈을 너무 많이 꾼다. 끊길 듯 끊이지 않는 실타래처럼 돌돌돌돌 길게 계속되는 꿈들의 향연. 그 속에서 나는 가끔 꿈과 실제를 혼동하곤 한다. 이는 우울증 약 복용 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이다. 꿈을 너무 많이 꾸니까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고 가끔은 이제 푹 잤다고 생각해서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점심때가 지나서 일어났는데 그게 꿈인 적도 있었다.

수면의 질이 낮아지니 솔직히 생활의 질도 낮아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익숙해졌다면 너무 우스우면서도 슬픈 걸까? 이미 오래된 나의 한밤 중 뒤척임은 이제는 인이 박힌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 아마 오래전 중학교 때부터 나는 밤이 길었던 것 같다. 그냥 생각이 많은 애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는 생각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때는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이었는지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밤을 지새우거나 했다.

잠이 들고 싶어도 못 드는 날이 많아 괴로운 적도 많았지만, 사실 그냥 그 밤을 즐겼던 날도 많았다. 나는 낮 보다 밤 시간을 더 좋아한다. 모두가 조용히 잠든 그 시간에 혼자 깨어서 그냥 가만히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맡는다. 마음이 힘들 때 달래줄 수 있는 건 어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 늘 밝은 빛을 동경하지만 삶은 어두운 밑바탕 위에 밝음을 뿌리는 거니까. 가끔은 어둠에 가려져 있어도 그게 절망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휴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낮의 많은 상념들을 밤바람에 그렇게 날려 보낸 적이 많았다. 영원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내면의 소리를 밤이 되면 몰래 털어놓았다.

그러나 엄마가 떠난 뒤로 나는 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온전히 깜깜한 곳에선 잠이 들지 못한다. 항상 작은 무드등이나 은은한 조명을 켜 둬야만 잠이 들 수 있다. 아스라이 흩어지던 내면의 비밀들을 속삭이던 밤들이 엄마가 떠난 이후로 나를 집어삼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잠 못 드는 밤, 밤공기를 맡으며 인공위성인지 별빛인지 모를 불빛을 찾아보진 않는다. 대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그때와 달라졌을 뿐 여전히 나는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수신인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답장을 받을 때까지 아마 빛보다는 어둠과도 같이 까맣고 칙칙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한동안이 될지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어두운 밤도 나의 하루이니까. 언제고 사랑할 것이다. 흔들리는 불안한 마음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칠흑같이 깊은 밤을 지나다 보면 편안한 밤이 찾아오지 않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글자씩  내려가는 오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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