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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08. 2021

나와 이니셜이 같은 너는

그리운 친구 HJ에게.


  안녕, 나와 이니셜이 같았던 HJ야.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 그러나 너에겐 영영 도착할 수 없는 편지겠지. 한동안 연락을 기다렸다면 믿어줄래? 너와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났지. 이름이 비슷한 우리는 비슷한 듯 참 달랐어. 너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고, 나는 아니었지. 너는 똑똑했고 반짝반짝 빛나 보였어. 언제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었으니까. 흔들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는 갈대 같은 내 모습과 너무 달랐지. 그런 네가 부러워 때때로 질투하곤 했어. 하지만 그 질투마저 무력하게 만들 만큼 넌 멋진 사람이었어. 결국엔 항상 인정하고 말았지.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행성 속에 사는 친구. 우주에 먼지 같이 부유하는 나와 달리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너를 항상 더 이해하고 싶었지.

  기억하니? 운동장에서 우리가 떠들던 30살의 미래. 그 미래가 도래한 지금 너는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며 지내고 있니? 그때 우리는 마냥 해맑았어. 그래, 해맑다는 표현은 이제 쓰기 참 힘든 표현이야. 그때만 가능했다는 걸 몰랐어. 운동장 바닥에 63 빌딩을 그려가며 어른이 되면 꼭대기 층에서 멋있는 식사를 하자고 했지.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 안 되더라. 나는 어른이 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우주의 먼지야. 너는 너만의 행성을 여전히 잘 지키고 있는지 궁금해.

  네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해외에 가서 공부를 할 거라고 선언했을 때 정말 놀랐던 기억이나. 나는 어딜 가든 눈치를 보는 사람이잖니. 항상 체육시간에도 정직하게 팔을 벌려 줄을 지켰지. 안 되는 뜀틀은 못하겠다는 말을 못 하고 팔에 파스를 붙여서라도 해내려 했고. 책임감이 넘쳐서가 아니야. 그저 겁쟁이일 뿐이야. 면접에서 가끔 책임감이 뛰어나다는 둥 믿을 수 있다는 둥 말하는 내 모습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난 줄을 이탈하는 게 너무 무서워, 남들과 똑같이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웃어야 하고, 살아야 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병이 났나 봐. 그때는 너의 용기가 마냥 부러웠어 네가 용기 있게 태어난 줄로만 알았어. 사실 너도 용기를 내려 노력한 건 줄 몰랐어. 그걸 알게 된 건 네가 영영 내 곁을 떠나고 나서도 한참 뒤였어.

  너와 나 그리고 S. 우리 셋은 언제나 함께였는데. 어느 순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지. 금가고 깨지기 시작했는데도 몰랐어. 유리가 떨어지고 있는지 몰랐지. 알았다면 손에 박혀 피가 나더라도 밑에서 막았을 거야. 더 이상 산산조각 나지 못하도록. 한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산산조각이 나버린 마음은 다시 이어 붙일 수도 없으니까. 너와 내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반드시 한 조각일 줄 알았지.

  

  집안 사정으로 유학 중간에 돌아온 너는 내색은 안 했지만 많이 힘들었을 거야. 너의 꿈이었고, 너의 행성이었으니까. S와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새내기가 됐다는 사실에 기뻐 대학 이야기로 꽃을 피웠었지. 어른스러운 너는 항상 내색하지 않았어. 그때도 묵묵히 우리 얘길 들어줬던 기억이 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 미안한 부분이 많아 너에게. 이제 와서 변명 같겠지만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항상 전하고 싶었어. 엊그제 네가 유학시절 내게 보낸 편지를 읽었어. 그 흔한 답장조차 네가 다시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내가 안 했었더라. 너는 그 편지에서 서운하다고 말했었지. 나는 왜 너에게 답장을 쓰지 않았을까? 여름방학 때 돈을 모아 네가 있는 유럽으로 가겠다고 말한 것도 나는 지키지 않았지. 이렇게 무심한 친구가 또 있을까?

  왠지 네가 이제야 알았니? 라며 잘한 것도 없는데 왜 우냐고 할 것만 같아 얼른 눈물을 닦았어. 이제 서야 왜 편지 내용이 보이는 거니. 분명 우리는 똑같이 읽고, 똑같이 듣고, 똑같이 보는데. 왜 다르게 읽히고, 들리고, 보이는 거니. 네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같은 처지가 된 지금 너무 절실히 느껴지는 거야. 정말 먼 타국에서 눈물 나게 외로웠겠구나. 좀 더 알아줄걸. 하는 후회 같은 건 이제와 소용없는 것이지. 외로 워도 친구를 위해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을 그 마음이 뭔지 알아서 눈물을 펑펑 흘렸어. 조금이라도 덜 슬프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의 나처럼. 마음을 받아 줄 수신인을 찾아 헤맸겠구나. 그렇게 너의 이야기를 나에게 건네려 했구나.

  그래도 우리는 가끔 전화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었지. 세상 밖으로 꺼내면 유치하다고 욕먹을 농담들을 말하거나, 정말 사소하고 쓸데없어서 기억도 나지 않을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늘어놓거나. 누가 보면 미쳐 보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잘 알았으니까. 미치지 않기 위해 미친 척 웃어야 한다는 걸. 너의 시간이 아침이고 나의 시간이 깜깜한 밤일 때 우리는 항상 전화를 했지. 그러다 종종 너는 한국이 그립다고 이야기했었지. 내가 그때 은연중에 너를 웃게 해 줄 방법이 뭐가 있을까 싶어 더 바보 같은 이야기만을 늘어놓았다면 네가 믿어줄까. 동시에 어쩌면 한편으로 부담되었을지 몰라. 그러나 친구는 가끔 부담스러울 만큼 어두운 부분까지 껴안아야 한다는 걸 그때의 내가 알았더라면.

  엄마의 사망선고가 내려진 . 장례식장 주소를 S에게 보냈지. 그리고 S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말했지. 너도 있었으면 좋았을 . 이럴  우리 셋이 있음 얼마나 좋아. 너한테 힘이 되잖아. 나는 애써 태연한  아니야, 이미 멀어진 사이잖아.라고 말했지만 사실 네가 그리 웠어. 엄마도 너를 사랑했으니까. 내가 너를 많이 자랑했었지. 친구라는  너무 좋았으니까. 정작 너를 도와주지 못한 꼴이 되었지만. 아무튼 그러자 S 사실, 페이스북으로 계정을 찾아냈어. 그래서 연락을 해봤어.라고 말했어. 너는 이런 식으로 보냈다고 대략 전달해 들었어.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고. 자신도 장례식장에 가고 싶지만 지금 해외에 있어서 가지 못한다. 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평안하기를 기도한다고. 사실  때는 너를 미워했어.  떠날  이유 없이 갑자기 증발해버리듯 번호도 바꾸고 사라졌으니까. 앞서 말한 이유들은 내가  년간 고민하면서 찾아낸 증거물들 같은 거야.  사건이  일어났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니까.

  하지만 더는 미워하지 않아. 오히려 진심으로 전하고 싶어. 너만큼은 여전히 당당하게 자신의 세계에 두발을 딛고 서있길 바라. 계속 살아있다면 우리가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미 기억 저편에도 내가 없으려나? 나는 여전히 종종 너를 생각해. 내 이름을 보면 네가 생각이 나고, 네가 좋아하던 제이슨 므라즈의 <A beautiful Mess>를 들으면 생각이 나. 너는 언젠가 이 곡을 같은 시간에 듣자고 말했었지. 나는 같은 시간에 듣는 걸 확인할 길이 없는데 들어서 뭐해? 라며 말했지만, 네가 말했지 같은 시간에 같은 노래를 들으면 너랑 나랑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그래. 아마 오글거린다고 말하면서도 네 뜻대로 지하철을 기다리며 약속한 시간에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나. 사실은 쑥스러워서 그때 말 못 했지만, 어쩐지 노래를 틀 때 지구 건너편에 있는 네가 덜 외로웠으면 싶었어. 그날 밤 너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하니 너는 기뻐했었지.

  왜 하필 이 노래였을까. 의문을 가진 건 네가 떠난 뒤였어. 모든 건 네가 떠난 뒤라 참 미안해지네. 노래 가사와 함께 마지막 말을 전하고 이만 줄일게.

'당신은 꿋꿋한 척 하지만 약하고, 소박하지만 욕심도 많죠.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네가 흘겨 쓴 글씨를 보면, 당신이란 존재가 너무 난해하고 어려워져요...(중략) 우리는 여기 현실 속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또 여기까지 함께 왔으니까요. 여기에요.. 여기에서요'

우리는 여기 현실 속에서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고 있잖아. 비록 만날 수 없어도 응원할게. 너의 행성이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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