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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15. 2021

0으로

가끔은 남김없이 사라지고 싶어요


0으로 가고 싶다.

더 빼고 싶지도 않고

더 더하고 싶지도 않다.

막다른 길 쯤은 눈을 떠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무서워 눈을 뜰 수가 없다.

손을 더듬더듬 휘저어보니

차가운 벽이 닿는 감촉이 서늘하다.

눈을 뜨면

0으로 갈 수 있을까.

쟤는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너무 울적해 보이지 않아?

답지 않게 생각도 많아 보이고.

그 씨앗을 먹고 자란 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어제는

그제는

그저 사는 대로 살았으나

오늘은 사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열의 없는 와중에 세차게 뛰는 심장이 원망스럽다.

0보다 아래로 심장을 얼리거나

0보다 위로 심장을 팔팔 끓이거나

내 맘대로 조물조물 모양을 잡은 뒤에 다시 집어넣고 싶다.

아! 이다지도 불쾌하고 께름칙한 마음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엄마에게 종종 물었었다.

1부터 5까지 표현했을 때 어느 정도로 아프세요?

참을성이 많은 엄마는 항상 애매하게 3이라고 답했다.

나는 참을성이 없는 걸까.

세상에 수많은 숫자 중 하나를 대보려 해도 머리가 꼬이고 마는 것이다.

과연 이 마음을 얼마로 표현할지 가늠하려 하다가 그만둬 버리고

그저 외치는 것이다.

0으로 가고 싶어요.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날 데려가 주세요.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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