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되감기를 많이 누르지 마세요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는 고등학생 때 자주 듣던 노래이다. 가수는 제목을 따라간다는데, 앵콜을 바라지 않는다는 제목을 파격적으로 붙여야만 했던 이유가 궁금해서 듣게 되었다. 내용은 끝나버린 노래를 아무리 다시 불러 달라 해도 부를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떠나버리면 앵콜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되감기를 참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좋아하는 드라마는 재탕 삼탕은 기본에 어떤 노래에 꽂히면 무조건 한 곡 반복을 한다. 감정 역시 깊게 우려내는 찻잎처럼 진하게 우려 마시곤 한다. 어떤 이들은 감사하게도 고유의 특성과 감수성이라 이름 붙여주지만, 내가 보기엔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줄 모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단단하게 취향으로 쌓아 올린 내공보다도 엉성하게 얽혀있는 나태함에 가깝다. 익숙한 것이 너무나도 편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목록들은 몇 년째 업데이트가 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내 나태함의 증거이다.
좋아하는 영화 : 이터널 선샤인, 러브레터, 미스 리틀 선샤인, 안녕 헤이즐, 원더, 인디 에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윤희에게
좋아하는 드라마 : 봄날,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내 이름은 김삼순, 밀회
좋아하는 노래 : 소녀감성 100퍼센트, 원하니까, 있지, 난 행복해, 재연
반짝반짝 쌓아 올린 취향들을 마르지 않도록 갈고닦는 것은 중요할 테다. 사실 영화, 드라마, 노래를 질리도록 몇 번이고 감상하고 듣는다는 게 뭐가 그리 문제가 되겠느냐 만은 비단 취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감정으로 끌고 올 때 문제는 발생한다.
취득한 감정들을 길고 깊게 끌고 가는 것을 늘 경계하려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도 안타까운 날들이 많다. 마치 오락가락한 요즘의 날씨처럼 어떤 날은 화창한 내가 되었다가 어떤 날은 먹구름 낀 내가 되고 만다. 더욱더 큰 문제는 그 발단이 아주 사소하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약을 잘 챙겨 먹다 물 컵에 찰랑거리는 물이 조금이라도 넘쳐흐르는 날에는 갑자기 눈물이 난다. 작은 실수의 파도는 큰 폭풍처럼 밀려와 이리저리 뒤흔들고 감정을 뿌리째 뽑아버리곤 한다. 누군가에게 지나갈 잔잔한 바람이 나에겐 돌풍이 되는 것도 믿기지 않아 처음엔 그 마저도 곱씹곤 했다. 멈춤, 되감기, 재생, 되감기, 멈춤
앞서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아빠에 대하여 말한 적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 테이프로 음악을 자주 듣곤 했다. 이름 모를 샹송부터 중경삼림 ost '캘리포니아 드림'도 테이프로 들었다. 테이프로 음악을 들을 때 되감기는 필수다. 중경삼림 노래가 듣고 싶던 나는 재생이 끝나기가 무섭게 되감기를 해서 다시 한 곡 반복을 하곤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되감기를 돌리면 테이프는 이내 늘어져버리고 만다. 늘어져버린 테이프를 살리려고 엄마에게 부탁해 여러 번 테이프 구멍 사이에 연필을 넣고 돌려 살려냈지만 결국 이내 다시 늘어져버리고 말았다.
감정도 어쩌면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한 번 늘어진 감정의 구간은 너무나도 연약해서 애써 당겨보아도 다시 팽팽하고도 올곧게 있을 수 없다. 공격에 취약해진 탓에 섬세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종국엔 외부의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되니 본인의 소리를 낼 줄도 모르게 된다.
감정이 자꾸 과거의 일에 멈춘 채 있거나, 되감기를 하려 할 때 현재로 데려오는 연습을 한다. 현재의 흥미로운 것들을 모아서 다시 취향을 바삐 쌓아 올린다. 어느 날인가 몸이 아플수록 본인의 세계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침대 주변의 먼지를 쓸어내야 하고, 잘 차려진 밥상 하나를 차려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세계는 점점 비좁아져 간다는 글이었다.
세계의 외연을 넓히기 위하여 따뜻한 밥상 하나를 차린다. 소박하지만 갓 지은 밥에 뜨끈한 된장찌개 하나면 나를 위한 첫 세계를 만난다. 그리곤 맘에 드는 노래를 하나 틀어놓고 질리도록 듣는다. 오늘은 글을 쓰며 '앵콜요청금지'를 듣다가 샤이니의 '재연'을 들었다. '익숙함이 준 당연함 속에 우리 사랑은 야윈 달처럼 희미해져' 가사 한 줄에 감탄을 하며 역시는 역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을 다 쓴 뒤에는 일주일 간 읽겠다고 다짐만 한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을 것이다.
겹겹이 쌓이는 페스츄리처럼 앞으로 나아가며 바삭한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최대한 여러 겹의 층과 결이 살아있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