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재미있게 즐기기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금요일 퇴근 후 저녁 LP를 돌리는 시간. 최근에 구매한 앨범은 Keith Jarrett –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키스 자렛이 심신이 힘들어서 피아노 연주도 하기 힘들 때 곁에서 아내의 지지로 인해 간단한 피아노를 칠 만큼 회복이 되었고, 이 앨범을 아내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편안하면서도 잔잔한 멜로디가 흐르면 아내를 위하여 연주를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받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때때로 오로지 그것을 생각하며 일주일을 버틸 때도 많다. 금요일의 시간을 향하여 간다. 키스 자렛의 음악을 마음껏 듣다가, 러브홀릭의 앨범을 꺼내 들어 과거를 추억하다가, 해리 스타일스의 워터멜론 슈가를 듣고, 마무리는 변진섭으로. 나에게 앞으로 남은 날이 얼마나 있을까. 오늘 하루만 글을 쓰지 말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쉬어볼까 늦장을 부려본다. 가끔 망망이는 말한다. 왜 이렇게 글에 집착을 하느냐고.
그렇다. 갑자기 시작된 나의 글쓰기 여정은 흥미를 넘어서서 집착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루라도 빼먹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시작했고, 글이 막힐 때는 심지어 불안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까지 스트레스 받으면서 언니가 할 필요 없잖아. 언니는 글이 업도 아니고, 업이라면 돈도 받았으니 그 값도 해야 하고 기한도 맞춰야 하고 얼마나 스트레스겠어, 하지만 취미니까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게 장점 아니야? 지금 그 장점을 즐겨. 취미로 시작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잡아먹히는 거야.
문득 방에 놓인 방치된 통기타가 생각났다. 그것은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낙원상가까지 가서 야심 차게 구매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곡 하나 연주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기타를 구매하고 몇 달간은 열정이 넘쳐 실용음악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코드를 하나씩 배워가며 집에 오면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에 연습을 했다. 그랬던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너무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나를 집어삼켰다. 엄마는 네가 대회를 나갈 것도 아닌데 제발 즐기면서 하라고 했지만, 나는 꼭 잘 해내고 싶었고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아 눈물까지 흘렸다. 시원한 엄마의 성격은 결국 그렇게 할 거면 때려치워. 스트레스받는 게 왜 취미야 도대체? 열심인 것도 정도가 있는 거야 너는 너무 지나쳐.
지나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인다. 오래간만에 생긴 나의 열망과 흥미가 사라지면 또다시 열의를 잃은 채 바람 빠진 풍선이 될까 무서웠다. 그래서 더 집착했는지 모른다. 글마저 사라지면 난 다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거야. 오랜만에 심장을 뛰게 해 준 이 설렘을 오래오래 가져가기 위해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새 돌아보니 잡아먹히고 있었다. 이러다간 부담감으로 한 글자도 적어내지 못할 것이다. 스파이더 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 맨 슈트를 빼앗기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피터에게 아이언 맨은 이렇게 말한다. '슈트 없이 아무것도 아니면 더더욱 가져선 안 돼' 나에게서 어떤 것을 앗아가도 나여야만 한다. 내가 나로서 두발로 자유롭게 설 수 있을 때 어떠한 것이라도 가지고 놀 용기와 체력이 생길 것이다. 그게 LP이든, 글이든. 언제나 재미는 재미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