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친구 J에 대하여
나의 오래된 벗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 명의 친구들이 있다. 그중 몇 명의 친구들은 물리적인 시간을 ‘오래’ 채운 벗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몇 명의 친구들은 시간을 오래 채운 ‘벗’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친구들만 추리고 나면 정말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만 남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J이다.
보통 오래된 친구라 하면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됐을까? 를 복기하여 보면 안개 낀 산을 바라보듯 아득하게 멀어진 기억만 듬성듬성 머릿속을 채우고 마는데, J만큼은 그 첫 만남이 참으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아니 떠오를 수밖에 없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 전에 석식을 먹고 양치질을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J와 친구가 되었다. 또렷하게 기억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의도적인 마주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그로 인해 동네에서 꽤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친구를 목숨같이 여기던 시절, 일면식도 없는 동네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그 시절 꽤나 상당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일들이 왜 그때는 그렇게 별것이었는지. 어쩌면 인생 자체가 별것과 별것 아닌 것을 오가는 장난 같은 일들의 반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친구를 사귀는 문제가 꽤나 별것의 일이었고 그로 인해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었다. 나름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입담을 꽤나 발휘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게 착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지루하고 지난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러던 도중 낯익은 얼굴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어, 아마 초등학교를 같이 졸업했던 것 같은데?’ 시선 끝에 들어온 얼굴은 J였고, 열심히 기억 속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희박하지만 남아 있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J와 마주칠 타이밍만을 기다렸고 그게 바로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던 순간이었다. 내 목소리는 분명 볼품없이 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질문이 얼마나 나에겐 모든 용기를 그러모아했던 질문이었는지. ‘너도 그 초등학교 나오지 않았어? 우리 같은 반이었는데’
인생에는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꼭 그때 해야만 하는 행동들, 말들. 그리고 대부분은 찰나같이 찾아와 아주 긴 여운을 남기곤 한다. 그때 말을 걸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해 준 그 순간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걸지 못하고 했어야만 해- 하고 가정의 상황을 남겨서 나의 오래된 ‘벗’ 중에 하나가 J가 아니라면 아주 긴 실타래 같은 미련을 끌고 다녔을 것이다. 어쩌다 생각나면 머릿속에서 엉켜버리면서.
J는 이런 첫 만남의 강렬함이 아니더라도 참으로 특별한 친구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어디로 튈지 모르면서도 가장 알기 쉽다. 그녀는 솔직하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나는 그녀의 그런 점을 존경한다. 자신을 포장지로 감싸는 게 더 쉬운 세상에서 그녀는 도통 본인을 감싸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감정표현에 솔직하다는 뜻이며, 사람에게 가감 없이 행동함으로써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그녀를 100%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다. 나는 항상 그녀의 직선적이고 어찌 보면 딱딱한 것 같은 말투에서 역설적으로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읽는다. 이때의 순수함은 세상을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함과는 다르다. 상대를 온전히 바라보려는 순수함을 말한다. 속된 말로 그녀는 나에게 뒤통수를 칠 것 같지 않다.(물론 그녀의 사정도 들어봐야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녀가 있어주어서 고등학교 생활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나를 가장 철없는 모습으로 만들어 주는 친구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J를 꼽을 정도로 늘 그녀 앞에서는 무장해제가 된다. 말도 안 되는 실없는 장난을 치면서 말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는데도 말도 안 되게 인생에서 기억에 각인된 시간들이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을 학창 시절이라고 부른다. 학창 시절에만 할 수 있는 무모한 장난과 철없는 농담들을 그녀와 나눌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무미건조하고 메말라가던 사춘기 시절에 한 방울의 물이 얼마나 큰 새싹으로 자라났는지. 그리고 그 새싹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커졌는지는 친구가 전학을 가게 되면서 깨달았다. 함께 장난을 치고 하교를 하던 J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너무도 컸다. 다음 권을 더 읽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데 누군가가 이미 대여중인 만화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직 결말이 준비 안됐는데 결말을 내야 하는 기분이 얼마나 슬픈 건지.
이제 더 이상 연결고리는 사라졌고 연락은 뜸해졌으니 우리가 우리로 지내는 일이 사라지려나? 생각할 때쯤 연락이 닿았던 것 같다. 아마 대학교를 합격하고 나서 서로 오랜만에 얼굴을 보면서 밥을 먹었던 것 같다. 참 묘하게도 첫 만남은 강렬한데 우리가 어떻게 다시 연락을 하고 지금까지 친구가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행방이 묘연하다. 자취를 감춘 범인처럼 내 기억의 고개 사이사이로 꽁꽁 숨어버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는 옆에서 즐거움을 주는 벗다운 ‘벗’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 내가 시답잖은 농담을 할 때가 좋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도 재미있고, 세상의 농담거리를 가져와 우리끼리 낄낄거리며 웃을 때도 신난다. 그녀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한순간에 학교 운동장을 떠올리게 된다. 야간 자율학습 쉬는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먼 미래에 대해 진짜 저 먼 별처럼 이야기하던 시절. 그래서 걱정이 걱정답지 않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떤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마냥 슬픈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 시절을 같이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웃고 떠들 수 있는 추억이 될 수 있으니까. 이런 소중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다.
그녀는 이처럼 슈팅스타 같기도, 갓 짜낸 유기농 주스 같기도 하다. 통통 튀면서 솔직하다. 그렇다면 뜬금없는 뽀얀 해장국은?
앞서 말한 그녀와 나의 관계로도 알겠지만 진지하게 진심을 전하는 것은 연례행사와도 같다. 그리고 나는 말보단 글이 편한 사람이고. 오늘 쓴 이 글을 그녀에게 보여줄 작정으로 써 내려갔다. 즉, 이것은 나의 진심을 토로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그녀는 내가 힘들 때 옆에서 담담하게 위로해 준 친구이다. 이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들 때면 당연히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라고 말할 수 있다. J는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부터 돌아가셨을 때까지 유일하게 모든 걸 바로 털어놓은 친구이다. 사실 도움을 준 고마운 친구들은 많다. 그러나 모두 조금씩은 내 감정이 정리된 후에 사실들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엄마가 아팠던 사실도 모른 채 장례식장에 온 친구들도 많았다. 어쩐지 털어놓을 자신도 그렇다고 위로받기도 싫었다.
그렇다면 J는? 모르겠다. 나도 모르지만 J에게는 무언가 힘이 있다. 그 힘의 원천은 어쩌면 앞서 말한 내 뒤통수와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이 내 뒤통수를 친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는 항상 쉽게 덧붙이지도 그렇다고 쉽게 조언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들어준다. 듣다가 한마디 건넬 뿐이다. 뭐라 할지 모르겠다고, 잘됐으면 좋겠다고, 많이 힘들겠다고. 이상하게 그 어설픈 위로를 들으면 힘이 났다. J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 울음소리를 가장 많이 들어준 친구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우는 소리를 묵묵히 듣는 J가 너무 고마워서 그저 고마워서 나는 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엄마가 고비를 넘기던 날, J는 먼 길을 찾아왔다.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더 미안하게 손에는 찐빵을 한 봉다리 바리바리 들고서. (J가 말하기를 만두라고 하여 이후로 만두로 정정한다. 항상 헷갈린다.) 뭘 못 먹어서 어떡하냐며 가족들이랑 나눠먹으라고 행여 방해될까 봐 서둘러 돌아간 J가 눈에 채 밟히기도 전에 엄마는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그 만두를 먹을 새도 없이 엄마는 내 곁을 떠났다. 엄마가 떠나고 나서 병실 짐을 정리하면서 같이 챙겨 나온 만두를 나는 한동안 엄마 김치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먹지도 못할 걸 대체 왜 안 버리고 집으로 챙겨가냐는 아빠의 툴툴거림을 무시한 채 엄마의 김치와 만두 봉지를 보며 한동안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돌아가는 길이 멀어 걱정하는 나에게 굳이 괜찮다고 하룻밤을 자고 가겠다며 옆에 누운 J가 눈물을 짓는 걸 보고 또 울었다. 엄마는 J를 참 좋아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 눈물이 났다.
마냥 통통 튀고 달기만 한 게 아니라 가끔은 뽀얀 해장국같이 진득하고 깊은 친구. 너무 달아서 다른 맛을 잊게 만드는 것도, 너무 진해서 질리게 만드는 것도 아닌 친구. 이것이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쑥스럽지만 전하지 못한 나의 진심이다. 순댓국을 좋아해서 엄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친구. 그런데 눈물이 아닌 정겨움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소중한 인연. 언제나 J가 변화무쌍한 매력을 지닌 나의 벗으로 오래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