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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Oct 05. 2021

밀씨, 아무것도 아니어서 사랑스러운 맛

혼란한 일상을 사랑하는 것

“이 줄은 세상인데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일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지갑에 품고 다니는 오래된 사진 하나처럼, 마음에 품고 있는 장면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겐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연에 대해 설명하는 이 장면이 일상 속에서 종종 떠올라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처음 영화를 알게 된 건 중학생 때였는데, 밀씨가 하늘에서 떠돌다가 바늘에 꽂힌다는 표현이 아주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에서 우선 놀라웠고, 내가 마주치는 일상의 인연들을 곱씹어 본 적이 있는가? 반추해보면서 다시금 빨간불을 켜며 경각심을 가지기도 했다. 하늘에서 밀씨가 내려올 때 지금 놓치고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며 얼마나 되는 걸까.

사는 게 김 빠진 콜라 혹은 저염식 죽 혹은 드레싱 없는 샐러드 같을 때. 맛을 찾아보겠다며 오두방정을 떨었던 때가 있었다. 엉덩이에 불난 사람처럼 점잖지 못하며 여름방학 숙제를 몰아서 하는 학생처럼 강렬하고 파괴적인 방법들을 찾아 나섰다. 기억도 나지 않는 물건들을 사재 껴서 하루 종일 택배 뜯는 맛에 중독이 되는가 하면, 유행 따라 맛 따라(멋이 아니라) 그 시절 유행하는 맛은 다 먹어보겠다며 먹는 것에만 몰두하기도 했다. 그뿐이랴 케이 팝 아이돌 덕후답게 자랑스럽게 앨범을 박스 채 사재 껴 팬 사인회를 가기도 했다. 현재는 그 그룹을 탈덕했으나, 아직도 까지 않은 앨범이 그대로 박스에 있는 기이한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이 먹지 말아야 할 아니 못 먹을 맛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활력을 돋궈주는 맛에는 역시 조미료가 팍팍 뿌려진 맛들이 제격이니까. 실제 식단도 나트륨 과다, 당 과다로 전혀 건강을 고려하지 않아 100세 시대가 도래 한 현재, 장수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목표를 단기간에 달성할 것 같은 내가 건강한 한국인의 밥상 같은 맛만 찾자고 하는 것도 사실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매일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불량 식품 같은 맛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먹는 것에 진심인 우리나라에서 ‘불량’을 붙인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질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물건은 불량이 나올 경우 전량을 폐기하기도 하는데, 먹는 것에 당당하게 불량을 붙여서 판매를 하는 이유가 뭘까. 품질의 질이나 상태가 나쁜 식품을 먹으면서 보기도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다는 속담을 쓰는 것. 산다는 건 부러 장난을 하지 않아도 이렇듯 도처에 깔린 장난들을 자갈처럼 지르밟으며 걸어간다는 것이다.

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청개구리 정신을 모토로 삼는 미운 7살의 힘은 몹시도 커서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도 종종 발현이 되는 바이러스 인자인 것을 눈치챈 적 있는지 묻고 싶다. 나는 종종 눈치 챈다. 자극적이고 쾌감이 넘치는 즐거움만을 쫒다가도 반드시 심심하고 맹탕 같은 나날들이 그립다. 여행을 떠나면 얼마 못가 내방, 내침 대가 그리운 것처럼. 일에 지쳐 퇴사를 하면 다시 일이 하고 싶어 지고 일을 하면 다시 때려치우고 싶어 진다. 바이러스 인자는 점점 퍼져 사랑해마지 않는 아이돌을 봐도 가슴 뛰지 않거나 친구와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흥청망청 물건을 사재 끼며 놀아도 즐겁지 않은 나날들이 생긴다. 이럴 때 밀씨를 생각한다.

하늘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밀씨를 던지고 그 밀씨가 바늘에 들어갈 순간.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상상을 하면서 너무 작아 잃어버려도 모를만한 것들이 만들어 내는 감동이 무엇이 있을까 고찰해본다. 그런 날에는 괜히 일상에 바투 앉아본다. 창문에 이마를 바싹대고 할머니 집에 내려가는 길 내내 도로를 구경하던 언젠가처럼 같은 풍경이라도 찰싹 붙어 관찰하고 뜯어본다. 해가 지는 저녁 즈음 바람과 노을이 만들어내는 벽에 비친 블라인드의 춤사위. 들꽃, 나무, 그리고 잡초까지 그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질 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봐왔던 것과 다시 보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싶어지는 것. 지나칠지 머무를지 결정하여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지는 마음들.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감사할 목록들을 끄적여본다. 너무 사소해서 때로는 마음을 움직일 수도 없을 것만 같은 목록들이 여기에 있다. 1. 오늘 오래간만에 칼퇴를 하고 기다렸던 영화를 혼영으로 감상했다. 2. 출근길에 자몽 허니 블랙티 아이스를 사마셨다. 자 허블 아이스는 하루를 활기차게 만드는 사랑이다. 3.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감상평을 sns에 써봤는데, 그 작가님이 직접 좋아요를 눌러주셨다! 이건 짜릿한 기적이다.

하루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모르겠는데 이미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일 때. 아직 좀 더 할 말이 많은데 헤어짐을 고해야 하는 친구들처럼, 속편이 궁금한 영화를 감상하고 애가 타는 마음으로 후기들을 빠르게 스크롤할 때, 눈 감으면 지난 일이 바로 어제 같다는 말이 상투적이면서도 마음을 울릴 때.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 지나갈 날들의 거리가 너무 아득하여 우주의 그것 같기도, 말도 안 되는 속임수 같기도, 짜디짠 눈물의 맛 같기도 할 때. 눈물과 함께 흘린 콧물을 훔치며 내 앞의 나를 바라본다.

길치인 나에게는 네이버 지도가 필수이다. 처음 보는 길을 갈 때는 무조건 목적지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그대로 따라간다. 지도 위에 파란색 점은 내가 서있는 위치를 표시하고 곧이어 내가 걸으려는 방향에 따라 화살표 모양으로 가야 할 지점을 가리킨다. 길을 잃었을 때는 언제나 방향 설정이 먼저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그것부터 생각한다. 얼마나 걸릴지 가는 도중 얼마나 길을 잃어버릴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목적지, 방향, 걷는다. 입력 값을 넣으면 출력 값을 도출해 내는 세계와 같은 단순함이 필요하다. 길을 잃었을 때일수록 더더욱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늘 명심하려 한다. 단순하게 사랑하고 단순하게 감사하려 한다.

작은 일상들을 모아서 마음껏 사랑하는 . 성시경의 노래 가사처럼 ‘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사랑하는 만큼 감동이 다가오는 것을 믿으며 마음이 지옥으로 가라앉을  애써 단순하게 보려 하고 단순하게 들으려 한다. 사랑은 사랑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사견을 덧붙이지 않고 담백하고 밍밍하게. 허공에 뿌렸던 밀씨는 무슨 맛이 날까. 씨앗이니까 무(無) 맛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나는 아무 맛도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한 맛도 색도 멋도 없어도 좋다. 어느 하늘에서 덩실덩실 내려오다가 지상에 바늘에 꽂힐 때면 무엇이든 감동할 그런 밀씨가 되고 싶다. 오늘 하루는 일단  글을 완성했다는 . 그게 나를 감동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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