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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May 07. 2022

사랑의 이해에 오해가 없도록

문장부호로 말하는 사랑. 세븐틴의 <어쩌나>


사랑은 처음엔 물음표로 시작한다.


온점을 찍어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아무리 공들여 써봤자 파도에 밀려가듯 지워내고 다시 써야 할 일이 너무 나도 많기 때문이다.


사랑 앞에선 그저 흐물거리는 해초처럼 구불구불한 물음표를 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된다.


확고하게 온점을 찍지 못하는 마음은 정처 없이 떠돌다 질문을 건네기 시작한다.


호기심과 걱정 그리움.


모든 질문들은 길게 꼬리를 달고 지구 한 바퀴를 커브로 돌아도 그 꼬리가 길게 남을 정도이다.

확신을 받고 싶어서 혹은 알 수 없는 무질서한 마음을 표방하려 애를 쓰며.


그리고 그 순수한 마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못내 불안함의 물음표로 바뀌기도 한다.


너라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가 되기에 앞서 GPS가 없는 무능한 인간임을 인정해야 하니까.


너의 세계 안에서 겪는 모든 통제가 불가능한 경험들은 짜릿한 설렘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나의 세계에서는 예측 가능한 범위가 좁아지게 됨을 뜻한다.


하지만 탄탄한 자아와 탄탄한 세계를 이룩하였더라도 그것이 때로는 뒤집힐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단순히 자기 파괴적인 행위가 아닌 본인의 세계를 넓혀가기 위한 한 단계의 도약이 맞다면 우리는 사랑을 확신한다.


너에게 건네던 질문 보다도 스스로에게 건네는 질문의 수가 많아질 때 온점을 찍을 준비를 마친다.


그리하여 한밤중에 모든 걸 때려치우고 한달음에 너에게로 달려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아닌 문장부호 하나에도 웃음이 비실비실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다지도 가깝고도 낯선 사랑이란 감정은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혼란을 가중시키는 이 모험이 과연 재미난 모험인지, 함정인지.

물음표가 가득한 나의 머릿속에 잠도 오지 않는 밤이 늘어만 가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그리하여 주변에 실토할지도 모르겠다 난 어쩌면 좋을까?


세븐틴의 <어쩌나>는 문장부호로 말하는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마주하고 동시에 마주친 커다란 물음표를 껴안아 터트린 뒤 온점만을 남긴다.

그리하여 자신 있게 깨닫게 되면 느낌표로 마무리하는 그런 사랑이야기.


여름의 초입에 도달하면 <어쩌나>의 계절이 왔다고 생각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 노래를 들으며 다시 한번 절감한다.

어떠한 계절에 맞는 노래를 듣는 것 혹은 노래를 들으며 계절을 떠올리는 것.

단순하지만 어려운 연상 과정은 우리나라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생각보다 타국의 사계절은 우리나라만큼 구별이 뚜렷한 비비드 한 색감은 아닌 경우가 많다.

경계가 있기는 하나 그 색채가 살짝 파스텔 톤이랄까.


스위스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지 않아 오리털이 잔뜩 들어있는 점퍼는 장롱에 처박아도 될 정도의 날씨가 대부분이고, 태국은 알다시피 이름만 겨울에 해당하기에 눈은 구경도 하지 못하지만 멋으로 코트를 입는 정도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혹한의 겨울을 견디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털이 수북하게 달린 롱 패딩도 껴입을 수 있으니 보다 강렬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계절의 경계에 민감하며 계절을 상징하는 것들이 보다 다양하다.


그리하여 노랫말에 그러한 특성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즐길거리라고 생각한다.

같은 징글벨을 불러도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귀와 볼이 빨개질 때 듣는 징글벨만큼 더 와닿는 순간은 없을 테니 말이다.


이 노래는 한 여름에 발매되었다.

음악 평론가도 뭣도 아니지만 노래와 계절을 유념하며 듣다 보면 이러한 공통점을 찾게 된다.

여름에는 보다 가벼운 사운드의 음악의 주를 이루고, 겨울에는 보다 묵직한 사운드가 된다고.

우리가 옷을 껴입듯 계절에 음악에도 한겹씩 사운드를 씌워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쩌나>는 통통 튀는 신시사이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시작부터 더운 여름이죠?

가볍게 들어봐요! 하고 포문을 여는 것만 같다.


사운드의 색채 자체가 무거움을 덜어냈기 때문에 가사 역시 통통 튀는 재치 있는 부분들이 참 많다.


노래는 이러한 가사로 시작한다.

'나의 밤은 deep deep. 켜져 있는 TV. 시끄럽지 내 맘처럼. 너는 대체 어떠한 이유로 내 맘을 껐다 켰다 네 멋대론지.'


사랑에 빠져 물음표가 가득한 상태로 출발하는 것이다.

내 맘은 깊은 밤에 홀로 켜져 있는 시끄러운 티비처럼 어지러워.

근데 너는 참 쉽게도 전원 스위치를 누르듯 내 맘을 맘대로 바꿔버리는 거야. 어떻게 가능해?


물음표가 가득한 소년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고 상대에게 달려간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아도 여전히 네가 좋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노래 전체에서 제일 좋아하는 가사인데


'너는 마치 찌더움이 없는 summer. 너는 여태 내가 느껴왔던 쓸쓸함의 온점. 네 생각에 잠 못 자다가 보면 오전.'


우선 찌더움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흥미로운데 이 부분을 작사한 멤버가 직접 만들어낸 단어이다.

그렇기에 국어사전에 검색을 해보아도 없는 단어이다.


찌더움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사람만이 그 맛깔난 뉘앙스를 캐치할 수 있는 단어로 찌는듯한 더위를 뜻한다. 소위 말해 찜통 같은 더위를 견뎌낸 K-더위를 아는 우리에게 최적화된 단어인 것이다.


그런 더위가 없는 여름이라는 것은 상상만 해도 얼마나 보송보송하고 쾌적한지.

사랑에 빠진 나에게 너는 그러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 노래가 7월에 나온 것을 상기시켜 본다면 얼마나 너라는 존재가 더더욱 나에게 사랑이며, 절실한지 느껴지는가? (K-더위에는 찌더움이 없는 여름은 상상 불가하니까)


그다음 단락은 이 글을 쓰게 만든 결정적 이유인데 '너는 여태 내가 느껴왔던 쓸쓸함의 온점'

가끔 너무 맘에 드는 표현을 만나면 머릿속에 느낌표가 탁 치고 가는 기분이 드는데

이 표현을 마주했을 때 느낌표가 최소 세 개는 내 머리를 치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여태 내가 느껴왔던 쓸쓸함을 길게 줄글로 쓰는데 써도 써도 외롭고 또 외롭고 생각해보니 어제도 외롭고 오늘도 외롭고 내일도 외로운 거 아닌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 너를 만나니 외롭지 않아.


문장을 써 내려가며 참으로 나조차도 숨 막히는 문장이 아닐 수가 없다.

온점을 찍지 않고 접속사로 계속 문장을 이어가다 보면 숨 막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마무리를 확실하게 짓고 싶다면 온점(마침표)을 찍어 누르면 된다.


나에게 너는 그런 온점 같은 존재라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이다.

숨 막히는 외로움을 끝내 줄 하나의 존재.

혼란스러운 마음을 마무리하고 종결하는 너라는 존재를 문장부호에 비유한 것이다.


문장부호의 사전적 뜻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아래와 같다.


-글의 뜻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문장의 이해에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는 부호이다.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쉼표(,), 큰따옴표(" "), 작은따옴표(' '), 물결표(~) 등이 있다.


이해에 오해가 없도록 사용하기 위한 부호. 이 얼마나 배려 깊고 사려 깊은 표현인지.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에도 이해와 오해가 없도록 적절한 부호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표정과 눈빛 때때로 말투를 확인한다.


'그대는 어떤가. 나 때문에 잠들기 힘들까. 쉴 틈 없이 설레게 하면 어쩌나 어쩌나.'


이제는 사라진 부호들이 가사에서 보이지 않는가?

나 때문에 잠들기 힘들까?

난 이제 어쩌나?


계속해서 확인하는 물음표를 내내 달고 다녀도 결론이 하나로 도달한다면 온점을 다시 찍어야만 한다. 너에게 던지는 물음은 이제 소용이 없다.

내 마음은 좋아하는 것으로 종결이 났다면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아까부터 같은 말 계속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이게 다야. 별 어려운 말 다해봐도 내 진심은 이게 every everything.'


같은 말만 계속 맴돌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확인을 하던 마음에 온점을 찍어 확신으로 바뀌었다면 결국 확실해지고 뚜렷해진다.

확신을 갖는 마음은 이제 끝도 없는 가속력을 제공한다.

물음표로 머뭇거리며 조금씩 제동을 걸던 마음은 이제 의문 따윈 없다.


'밝은 넌 우주 저 끝까지. 닿을 만큼 더 빛나는 네가 없음 어쩌나'


시원한 보컬이 네가 없음 어쩌나 하고 물결표의 고음을 지를 때 인정하는 것이다 거짓 없는 사랑의 마음을. 그대로 가면 된다고 확답을 받은 마음은 앞뒤 거르지 않고 느낌표처럼 날쌔게 날아간다.


이전까진 상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자조하듯 던지는 물음표의 어쩌나? 였다면

이 부분의 문장부호는 네가 없음 어쩌나! 확신의 느낌표에 해당할 것이다.


이제 내 맘을 멈출 수 없어 그러니까 어쩌나!

그냥 널 끝까지 좋아할래! 이런 의미가 아닐까.


물음표로 확인하고 온점으로 확신하고 느낌표로 실해진다.


사랑의 여러 오해들이 있겠지만 그 오해들을 무겁게 말하는 대신 오해 따윈 건너뛰고 시원한 결말을 말해주는 노래가 찌는듯한 더위에는 제격이다.


당당하게 느낌표를 붙일 수 있는 마음이 찌더운 더위를 날려줄 거라 믿는다.


그리하여 나도 이 노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여름의 입구에서 하트모양 나무

   햇살 좋은 쨍쨍한 날에 노래를 들어보세요!

   (실한 느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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