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글이 안써진다.

뿡야! 괴물 같은 작가들의 세계

by 이야기 수집가


자. 이 거지 같은 추임새는 무려 스티븐 킹의 추임새이다. 난 글을 더 잘써보기 위해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샀다. 거기에서 스티븐 킹이 자주 사용하는 추림새이다. 뿡야! 이거지 같은 추임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책은 별로였다. 미안하오 킹형. 어찌됐든 킹은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개쩌는 이야기는 내안에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위 작가들이 격는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개쩌는 이야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개쩌는 이야기가 상대에게도 개쩔게 들릴지, 아니면 그냥 개같이 들릴지가 문제이다.


당장 누구나 개쩌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누구나 학창시절에 만약 저 여학생(혹은 남학생)과 내가 이어지면 어떨까? 주위에서는 어떻게 볼까? 라든가. 만약에 내가 슈퍼 파워를 얻어서 남들 몰래 슈퍼히어로 활동을 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 누구나 다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 이다.


만약 이런 이야기가 세계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혹은 우리가 처음 이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스티븐 킹의 거지같은 뿡야 대신에 좀더 나이스하고 젠틀한 추임새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이러한 누구라도 생각할만한 이야기는 사실 머나먼 옛날에 이미 만들어져 버렸단 사실이다. 전자는 익히 알고있는 로미오와 줄리엣 후자는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 처럼 말이다. 심지어 퀄리티 또한 우리가 감히 따라잡을 수 없다. 이런 뿡야!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이면서 왜 안나왔지? 라고 생각할 만큼 친숙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현대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예를 들어보자면 브래이킹 배드 정도가 있겠다.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이 마약상 하이젠버그로 전향하는 이야기. 어딘가 친숙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이런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있는 장르에 자신의 방식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식의 이야기를 창조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거지만 이 길이 더 힘들다. 여기에 대표적인 작가는 왕좌의 게임의 저자 조지 rr 마틴이라는 사람이있다. 이 사람은 그냥 괴물이다. 귀족 출신도 아닌 핫파이에게 서사를 부여하는가하면 사람도 아닌 나메리아의 복선과 결말을 설정해버리는 정신나간 완벽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관이 너무 커져버린 탓일까. 막판에는 설정 오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괴물중에 괴물이다.


아예 이판을 뒤집어버리는 게임 체인저도 있기는 하다. 이쪽의 대표적인 주자는 마리오 푸조의 대부나 스타워즈 제국의 전쟁 눈물을 마시는 새의 이영도 정도일 것이다. 아예 자신만의 새로운 루트를 구축해버린 것이다. 앞에 소개한 작품들이 상업성과 예술성을 인정 받으면서 지금은 비슷한 작품이 꽤나 나왔다. 특히 마리오 푸조 이후에 할리우드에서 갱스터 영화는 대표적인 장르가 되어버렸다. 그전에는 폭력배를 위화하기 싫어했기에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가 뜨고난 뒤에는 너도 나도 마피아 작가들을 찾아가서 비싼 돈을 주고 판권을 사들였다고 한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들을 모두 애송이 취금하는 정신나가게 괴물인 작가들도있다. 바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벌,악령등을 쓴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은 사람들도 못읽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나는 이소설을 읽고 이런 소설과 문장을 구사하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까에 대해서 생각 하지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놀라지마라 이 정신나간 작가는 수정 없이 이소설들을 한번에 작성하였다. 그 이유는 도스토옙스키가 심각한 도박중독으로 당장 아침을 먹을 돈이 없어서 소설을 고쳐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절박하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데 그래서 그랬나보다. 지금 내가 글을 잘 못쓰는 이유는 어머니가 3시 세끼 주시는 밥과 등따시한 보일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쓰고 난뒤에 3개월뒤에 도스토옙스키는 죽었다. 그래서 카라마조프가의 소설은 영원히 미완성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기서 더 이어가지 않아서 완벽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책이 더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느껴지기는 한다. 아마도 그이유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힘든 삶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작가들은 쓰려고 하였고 그래서 세계에서 인정하는 명작들이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입식 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위계 질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좀 작품을 보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이해하기 쉬워야하고, 인간의 불행을 보기 싫어한다. 고전 소설을 보면 거의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소설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비극이 무조권 좋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이 단순해 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소설가들이 꼬우면 니가 직접써라 라는 뉘양스였다면. 지금은 소설가들이 독자에게 맞추어주는 경향이 큰 것 같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결말이 좋지않으면 작가를 공격하려는 식당 아주머니 처럼.


두 시대 다 장단점이 있지만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쓰는 사람이 돈을 적게 받는 것은 조금 아깝기는 하다. 김훈 작가나 한강 작가가, 메이저 웹소설 작가보다 연봉이 적은 것 처럼 말이다. 그래도 한강은 노벨상이라도 받았지 다른 작가들은 심경이 어떻겠는가. 예를 들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든가. 만약내가 하루킨데 소설이 웹소설이나 라이트노벨보다 안팔렸다면 소설접고 네이버에서 웹소설 연재하러 갔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하루키 소설을 좋아한다. 집에도 10권이 넘는 하루키의 소설이있다. 요즘 최애 픽은 기사단장 죽이기. 미안하오 하루키공.


솔찍히 쓰고 싶은 것은 순수문학이기는하나 나는 하루키나 한강 도스토옙스키처럼 글을 잘쓸 자신이 없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재능의 영역이 크기는 하다. 내가 지금부터 한강작가에게 글쓰기 트래이닝을 4년정도 받아도 나는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은 아마 평생이 지나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웹소설을 쓰고 있다. 적당한 타협이다. 쓰다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쓰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