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새벽 겨울비가 내린다.
건조해진 마음에 빗소리가 떨어지니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들며 알 수 없는 지난
기억들이 떠오르는 듯하다.
사는 게 살아내기가 되어버린 지금, 사물을 보는
눈도 사람을 보는 눈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듯하다.
가끔씩 20대 중반에 수원에서 함께 일했었던
자장면집 사모님을 떠올리곤 했었다.
친구 같기도, 엄마 같기도 했었던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40대 후반쯤의 아줌마였다.
내가 아는 그녀는 여전히 소녀 같은 모습도 있었고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모습도 다분했지만
굉장히 선량하고 좋은 사람이었기에 친하게
가까이 지내곤 했었다.
때로는 남편의 심한 외도로 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하다가 큰아들이 발견하고 펑펑 울기만 했다는
사연까지 알려줄 정도로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이기도 했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중국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천대받는
직종 중 하나였고 많은 이들에게 하대 받거나
무시당하는 일이 많이 있었으며, 더군다나 당시
일하던 중국집은 수원 시내의 번화가 한복판에
있었기에
소위 말하는 동네 양아치들이나 한량, 혹은
건달 같은 이들에게 욕을 먹거나 배달이
조금 늦었다는 등의 이유로 천대받기 일쑤였다.
그런 그녀가 한 번은 중국집으로 걸려온 주문
전화를 받다가 씩씩대며 욕을 마구 하더니 두 팔을
걷어붙이고서는 전화한 이를 찾아가 요절을
내겠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그러다 진정이 된 후에 이야기 하나를 해주었었다.
좀 더 젊은 시절에 사장님이신 남편분과 함께
초창기에 중국집을 하던 시절에는 진상 손님에게
전화가 와서 욕을 먹거나 하면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잘못했다고 그저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고 했었다.
그렇게나 순수하고 야리야리하기만 하던
마음 약한 여인네가 이제는 팔까지 걷어붙이며
싸울 준비를 하는 억척스러운 강인한 아줌마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너스레를 떠셨다.
그 당시에도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나였기에
자신을 잠시나마 돌아보게 되었었는데
살아가며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이따금씩
그때의 사모님이 생각나면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한 번씩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곤 했었다.
늦은 새벽녘 조곤조곤 내리는 겨울비가 작은
기억 한 조각을 불러오고 한 번쯤 다시 보고 싶은
이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중에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모습의
나 자신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는 방법들을
조금씩 배워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혹은 살아남는 방법들을 조금씩 배워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가려는 그 모습 역시도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때의 억척스러운 아줌마 같던 모습을
자주 보이던 소녀 같던 그 여인의 모습도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
늦은 새벽, 겨울비가 내린다.
작은 기억 사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