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4월부터,
27살 4월까지...
18살 순수했던 시절..
틀에 박힌 교육이 싫어 학교를 자퇴하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중국집을 거쳐 온갖 알바로 버티며,
당시만 해도 거칠고 살벌했던
충무로 영화판..
그것도, 빡세고 군기로 소문난
영화 조명팀에서 5년의
시간을 보낸 후...
수행자가 되겠다며 삭발하고 출가 후엔,
1년 7개월 동안 숲 속에서
수행만 하는 생활을 하면서..
다시, 순수한 ‘양’이 되었다...
하산 후에 얼마간의 시간들은,
새로이 태어난 마음으로 일도 하고
밝은 삶을 살아가고자..
삶에 순수한 기쁨을 주는
여러 춤들을 배우며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다..
...
시련이 닥쳐왔다..
그 미칠 듯한 고통의 시간이 2년이나
이어지리라곤 당시의 ‘돌아온 양’은
상상도 못 했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해야 하는 상황.
아무런 연고도 없는,
수원 인계동에 있는 중국집에서
여러 들개 무리들과 함께..
5개월간 한 평짜리 고시원에서 잠을 자며,
깊은 고통만을 배달하였다..
얼마간의 돈을 모은 후,
첫 영화와 네 번째 영화를 촬영했던
마음의 고향 대전으로 가서..
알바를 하며 새로운 삶을,
없는 자신감으로 설계하던 시기..
다시금 방황하는 들개가 되어
극심한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린 어느 날.
살은 빠질 대로 빠져서
뼈의 윤곽이 드러났었고,
매일 밥을 굶다시피 하며
술만 마시던 중.
어느 새벽, 지칠 대로 지쳐
길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눈앞에 보이는 꽤 큰 병원의 응급실을
향해 마지막 힘으로 기어가다시피
몸을 질질 끌고 걸어갔다.
술 냄새 가득한,
거친 들개의 모습을 지켜보던
당직 레지던트는 말했다.
“술 드셨죠?.. 술 드신 상태로는 입원이
안 돼요. 내일 다시 오셔서 입원하세요..”
곧 죽을 것 같던 들개는 힘없이 응급실
침대에 누운 채로..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주 작게,
느린 속도로 나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 집에.. 혼자 있기 싫어요...”
잠시 정적이 흐르고..
죽어가는 들개를 보던 의사는 말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원래는 절대로 안 되지만..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지금 입원시켜 드릴게요...”
알코올 중독으로 보름간 입원을 하였지만,
저금통 동전까지 술을 사 먹고 난 뒤라..
병원비와 생활비가 필요했고..
너무나 인간적이셨던
담당 교수님의 허락하에..
입원 기간 동안 저녁과 새벽 시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던바와 와인바를 겸한 온갖 술이
가득한 근처의 술집에서 일을 하며,
환자복과 평상복을 갈아입는
하루하루를 보내었다..
당시에는, 들개도..
그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인간적인, 나이 든 교수님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젊었던 당시의 밝고 다정했던 주치의는
조금씩 친해져 가던 어느 날,
이런 말을 남기고
다음 날 의사직을 관두었다..
“.. 정말 힘이 들 때는.. 자신이 술을
마시고 있는 것도 모르더라고요...”
1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일은..
주치의가 남기고 떠난 말이
뇌리에 오래도록 화두처럼
남아 있었다...
보름이 넘어 퇴원을 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었지만..
다시, 아이러니하게도
병원비를 못 구해 안절부절못하다가..
원무과를 찾아가 반드시 갚을 테니
일단 퇴원을 시켜 달라는 말에
원무과장에게서 돌아온 말은..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럼, 돈을 구할 때까지 조금 더 입원은
가능한가요?..”
“네.. 그렇게는 가능합니다.”
결국 병원비를 못 구해서 입원 기간이
두 배 늘어난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빌린 돈으로 병원비를 계산하고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울증의 극심한 ‘조증’ 상태에서 기인한
알코올 중독과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때는 조울증이 뭔지도 모를 때였다.
아무런 ‘병식’조차 없던 상태.
그저 모든 것은 자신의 문제인 줄만
알았었다...
후에 6개월간은,
서울에 다시 올라와 끔찍한 시기들을
계속해서 보냈다.
툭하면 거리의 노는 아이들과 싸움을 하였고
저렴한 레드와인 한 병은
늘 메고 다니는 싸구려 갈색 가방에
꽂혀 있었다..
앉은자리에서 에스프레소 더블 잔
6잔을 마시기도 하며
극심한 카페인 중독과 니코틴,
알코올 중독, 불면증 등을 앓았고..
잠시였지만 얼어붙은 심장까지
더욱 차갑게 만드는 수갑을 찼던
날도 있었다...
정말 많은 일들, 많은 만남들이 있었으며..
수많은 여인들이 바람처럼 스쳐 갔다.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가슴속 깊숙한 곳에
자기만의 상처를 안은 채로
살아간다는 것을..
거리에서 처음으로 느끼게 되던
시기였다...
...
급격하게 ‘야성’이 사라져 감을
느끼던 들개에게 쉼 없이
이어서 찾아온 것은..
일반적인 ‘우울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조증 다음에 쉬지 않고 찾아온
소름 끼치는 우울증..
5개월은 집 밖에 거의 나가지도 못하고
극심한 대인기피증을 동반한 채,
주로 방에서만 매 순간..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지옥보다 지옥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후엔 가족들의 도움으로 폐쇄병동에
실려 가 3개월간..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약 8개월간의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생활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때는 그림도 그릴 줄 모르던 시기였다..
8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자살만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수백 번을 진심으로 기도했었다면
믿어줄까..
오로지 온 마음으로..
당장 죽는 것만이 간절한
소원이었던 시절..
매일 긴 시간 상담을 해주던
주치의가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모아 보면,
한 편의 영화가 나오네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순간순간이 견딜 수 없이
아플 뿐이었다..
끝없는 자괴감.
자신이 그때까지 살아오며
잘한 것은 거들떠보려고도 않고...
자신이 잘못한 일들만
거대한 돋보기로 확대해서
들여다보기만 했던 시절..
그렇게 8개월간 좁은 공간에서
극심한 대인기피증을 동반한 채..
죽어가는 짐승처럼 겨우겨우
숨을 붙여만 가다가,
너무나 힘들게 힘들게..
다시금 자신의 야성을 찾아갔다..
그때 폐쇄병동에서 3개월간 함께
생활했었던..
각자의 사연을 가진
수많은 마음 아픈 이들의 모습은..
그 어떤 책이나 영화, 학교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경험할 수 없었던
많은 가르침과 배움을 주었다.
지나고 보면,
‘인간’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값진 시간들이었다..
...
17년의 세월이 지나..
고독하고 많이 아팠던 들개는
‘예술가’가 되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자괴감이나 상처, 아픔, 고독까지도..
‘작품’에 담아 표현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예술가가 되었다...
많이 힘들게 꺼내어진,
오래전.. 2년의 암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