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맛(3화)

by pyj

윤하는 참으로 밝았다. 동료들의 너그러움은 그녀를 더욱 밝게 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친절이 베었고 과시하지 않아도 반짝이는 기품이 있었다. 선 넘은 농담도 자연스럽게 넘기는 여유가 있었으며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냄새 가득한 잘 꾸며진 꽃 같았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온기는 일상이 지루한 사람들에게 위안이었고 윤하의 영역에는 사람들의 관심과 친절, 그리고 훈기가 있었다.

물론, 설희도 그곳에 속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에 무심했고 자잘한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건네지 않았으며 인간적인 어울림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관심은 사무실에 공들여 만들어진 질서에 어긋났으며 일반적이지도 않았다.




그날, 윤하의 눈에 설희의 빈자리와 낡은 텀블러가 들어왔다. 매번 바뀌는 한약 냄새와 얼마나 달였는지 알 수 없는 농도 짙은 차의 맛이 참으로 궁금했다.

그래서일까? 윤하는 덩그러니 남겨진 텀블러를 홀린 듯 조심스레 잡았다. 5년을 같은 자리에서 숨죽이던 검고 낡은 물건이 그녀의 호기심을 따라 사람들의 눈길도 끌어당겼다. 설희의 존재감 없는 외모와 서툰 감정표현으로 긴 시간 공들여 쌓았던 질서가 윤하의 단순한 호기심에 한순간 흩어졌다. 일생이 관심 밖이었던 설희의 질서가 사람들의 관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윤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최대한 천천히 열었다. 반쯤 뚜껑이 열린 틈 사이로 톡 쏘는 냄새가 한약의 쌉쌀한 냄새에 섞여 새어 나오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기도 했다.

이윽고, 뚜껑이 완전히 열었고 윤하는 짜여진 순서처럼 자연스럽게 그것에 입을 대었다. 그리고 이내 “윽”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윤하의 입에는 평생을 느껴보지 못한 역한 맛이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비릿하고 물컹한 소름 끼치는 맛이었다.

“이리 줘봐.” 일전에 차 맛을 궁금해하던 부장이 가장 먼저 손을 뻗었다.

“이게 무슨 맛이야?”차 맛을 본 부장은 매스꺼운 듯 토하는 시늉을 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윤하는 생수로 연거푸 들이켰다.

“이거 먹고 죽는 거 아냐?” 부장이 생수를 가져다 달라는 과한 시늉을 했다.

“나도 마셔보고 싶어.”

“나도.”

“나도.”

사람들은 궁금함과 두려움이 섞인 호기심으로 너도나도 텀블러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때마침 설희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부장과 설희를 번갈아 보며 텀블러를 향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설희의 다음을 기다리며 지루했던 사무실을 이겨낼 재미있는 볼거리를 기대했다.

“김주임. 이게 무슨 차야? 맛이 왜 이래?” 부장은 설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김주임님. 맛이 이상해요. 이거 뭐로 만들었어요?” 윤하 역시 미안한 기색이 없이 부장의 말을 거들었다.

설희는 한가득 들고 있던 이면지를 책상에 “쿵” 소리가 나도록 팽개치며 부장의 손에서 텀블러를 뺏어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차와 이면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다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차가운 반응에 윤하와 부장도 더는 묻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무실은 타이핑 소리와 기이한 정적만이 가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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