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참아.”
최근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자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동료의 실수, 험담과 오해, 시기와 질투… 우리는 도저히 참기 힘든 순간마다 이 문장을 듣게 된다.
‘선’하고 ‘정의’ 로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우리는 수많은 순간을 참고 넘긴다.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과 함께.
대부분 그렇겠지만 우리는 매 순간 참고 인내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참고 견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기억의 망각 속에서. 그리고 어느새 나 자신이 참아낸 순간들마저 잊고 산다. 타인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내면의 나를 견뎌가며 튀어나오지 못한 욕구들을 덮어두고, 감정의 무게조차 잊어버린다.
삶은 결국 누군가를 참아내며 자신을 누르는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디는, 시간과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종교는 인내를 성령의 열매이자 신과의 약속이라 말하며 이겨내야 한다고 하고, 철학자 John Stuart Mill은 다수의 횡포 속에서도 개인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참는다’는 의미는 과연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를 위한 것인지 주체가 모호해진다.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소한 마찰 하나 해결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점점 많은 사람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회피하고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주체도 모호한 “네가 참아”라는 말로 씁쓸한 평화를 기원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누군가 때문에 머리가 아픈 나는 또다시 같은 말을 들었다.
“네가 참아.”
우리 사회가 강조한 '겸손'이라는 미덕은 스스로를 낮추고 두드러지 않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이 겸손함은 종종 사람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시키기보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침묵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그냥 참으머 만들어진 나의 평화가 정말 옳은 것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