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돌이켜 인간이 향유하는 다양한 감정의 비율을 나눠보면 그중 당연 으뜸은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걱정과 무력감,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보다 인간을 더욱 불행하게 한다. 영국의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에서 보고한 것처럼 하루에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신체도 괴롭게 한다. 세상은 글로벌로 나아가는데 지금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각박한 시기를 살아내고 있다.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 않은 불안과 충족되지 못한 관계 맺음을 숨기려 선택한 굴레인지, 아니면 인간의 실존적 존재가 불러온 불가피한 여정인지 알 수 없어도 그 골치 아픈 감정은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괴롭힌다. 관계의 부재, 상대적 빈곤, 태생의 외로움, 그리고 살아가면서 내내 받게 되는 비교와 좌절감... 어쩌면 우리는 외로움을 이길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Emmanuel Levinas"는 “인간의 자아는 자신이 지배하는 수많은 존재자들을 버거워하면서도 잔뜩 껴안고 있는 상태”라고 하며, 인간의 존재를 그저 ‘있음’으로 정의하였다. 이는 존재자 없이 존재하는 것(exister sans existant)으로 인간은 단순한 '있음'의 무의미성과 폐쇄적인 자폐성을 탈피하기 위해 끊임없는 관심을 타자에게로 향한다고 하였다. 그리니 인간이 잠시 얻은 무가치함에서의 '벗어남'은 또 다른 '타자의 인질'이 되어 갇혀버릴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한 자아론처럼 다수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음'과 '벗어남'을 반복하며 존재적 가치를 우적우적 버텨내는 것이다.
물론 오늘도 나는 그저 '있음'을 선택하고 있다. 사실 이것도 매우 어렵다. 그저 잘 버티고 있다며 위로를 건네며 굳이 내면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모든 복잡함은 시작이 있고 그 반대에는 끝맺음이 있으니, 풀지 못한 숙제도 언젠가 끝남을 위안 삼아 살아낸 시간들에 축복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