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2000년 11월에 유네스코 <경주역사유적지구(慶州歷史遺蹟地區)>로 등록되었다. 신라시대(新羅, 57-935)의 고도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적 지구(地區)이고 지금도 시간은 멈춰진 고요한 도시이다. 오래된 곳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에도 해마다 사람들은 그곳을 찾는다. 2024년 11월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4천363만 명이 방문했다고 하니 한국인의 대부분은 인생의 단조로움이 필요한가 보다 웃음도 난다.
경주 오릉에 가면 오래된 버스정류장과 그를 벗 삼은 작은 카페가 있다. 혼자 걷는 걸음이 피곤하고 지루하다 느껴져 잠시 들린 카페는 고요한 주인장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낡은 의자는 반들거리게 닦여 있었고 누군가 쓰고 간 낙서들이 포스트잇에 가지런히 붙어 그곳도 사람들이 들른다 자랑하며 빛바랜 색을 뽐내고 있었다. 주인장이 내려준 쌉쌀한 커피도 카페처럼 촌스럽고 싱거웠지만 도시의 흔한 커피처럼 초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커피가 경주의 봄과 참 닮아있다 생각했다.
커피 한잔을 사서 한참을 걸어 황리단길로 향했다. 요란한 음식냄새와 불빛들, 그 익숙한 거리들이 경주와 어울리지 않게 화려했지만 이상하게도 내게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도시가 익숙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혼자의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고독한 여행이 즐겁다. 도시인 듯 농촌인 듯 경주로의 여행도 그래서인지 더 아련하고 반갑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처럼 따분하지도 않았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사람이 만든 세련미가 도시 전체를 흐르고 있었다.
한국은 점점 나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인구 중 20.3%가 농촌에서 살고 있고 그중 노인의 40% 정도가 농촌에 살고 있다. 도시의 노인들은 바빴던 젊음이 저물자 혐오의 대상이 되어 그늘로 숨어들고 있고, 농촌의 노인들은 떠나간 자식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소외감과 고독감을 저물어 간다. 사라져 가는 학교만큼이나 늘어가는 노인들은 한국 사회의 숙제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75세가 넘으면 국가가 안락사를 지원하는 일본 영화 "플랜 75"가 공감 가는 사회를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경주를 걸으며 우리의 사회도 경주처럼 되었으면 바라본다. 시골과 도시가 함께하고, 고요를 찾아온 시끄러운 손님들에게 관대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오랜 친구 같은 사회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