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회색인간』

디스토피아의 끝에서 피어난 희망

by 서담

김초엽 작가님의 『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책을 지인이 추천해 줬을 때, 내용을 조금 스포 당했을 때,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SF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데다, 작가의 세계관이 나와는 다르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는, 빽빽한 인덱스 스티커들이 말해준다.


며칠 전, 오랜만에 긴 거리를 오가는 날이었다. 도서관에 들러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골랐는데, 바로 이 책이었다. 2023년 ‘부천의 책’으로 선정된 덕분에 소장본도 넉넉했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은, 그날 이동 중에 다 읽어 버릴 정도로 흡입력 있었다. 이후 며칠 동안 김초엽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기사도 찾아보며 염탐했다. ㅎㅎ


그리고 오늘은 김동식 작가님의 『회색인간』을 읽었다. 작가님은 중학교까지만 다니셨고,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도 없다는데… 그분의 짧은 글에서 느껴진 힘에 빨려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악플에도 “나에겐 글쓰기 선생님이 없었는데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다. 그 겸손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두 책을 읽으며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렸다.

절망과 통제, 인간성의 붕괴를 그렸던 고전적 디스토피아들. 하지만 『지구 끝의 온실』과 『회색인간』은, 비슷한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것 같았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 인류를 구한 건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영웅이 아니었다. 자기 일을 묵묵히 하던 식물학자 사이보그, 그 사이보그를 수리하던 수리공. 그리고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 흩어져 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어디에 가든 식물 종자를 심기로 한 약속을 지킨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지구가 재건된다.


평범한 사람들.

누구 하나 빠짐 없이 연약하고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들.


이 지점이 감동적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이것이 어쩌면 디스토피아의 유일한 희망일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재건된 지구의 모습은 매우 불완전하다. 재건된 세상에 사는 인류 공동체는 멸망기의 참담함을 잊는다.​​ 역사가 되풀이 되는 이유.

이 책은 말한다.

“돔 시티 안팎을 돌아다니며 지수가 도달한 결론은, 인간은 유지되어야 할, 가치 있는 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없는 종이라는 말에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이보그가 인류의 구원자라든가 사이보그와 인간이 사랑에 빠진다든가 그런데 그 둘이 다 여자라든가 이런 설정들도 평소의 나의 가치관과는 아주 다른데


김초엽 작가님의 필력이, 술술 읽혔고 설득력 있었고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회색인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상 세계의 만 명이 지저세계로 끌려가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 된다. 죽어 싸다고, 죽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죽어간다. 냉혹하고 처참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지하세계’가 아닌 ‘지저세계’라는 표현도 오래 머물게 했다. ‘아래 하’가 아니라 ‘낮을 저’. 이곳은 단지 아래에 있는 세계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 밑바닥까지 추락한 세계다. 물리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마저 침몰한 심리적 공간.


그런 극한의 세계 속에서도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예술이란 하등 쓸모없다고 여겨졌지만, 그 쓸모없는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살아가게 함을 본다.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죽을 때까지 꼭 해야 하는 한 가지 일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묻게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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