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손등엔 꽤 큰 화상 흉터가 있다. 그리고 그 흉터는 몸에만 남은 게 아니라 기억에도 남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이었다.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학원에서 돌아온 오빠가 자기도 끓여달라고 했다. 가스렌지를 쓰기엔 아직 무서웠고, 대신 전자레인지는 능숙하게 다루던 때였다. 전자레인지에 사골국 그릇을 넣고 면과 스프, 물을 부어 7분 30초 돌리는 ‘전자렌지 라면’은 내 시그니처 메뉴였다. 꼬들꼬들하고 스프가 깊이 밴 그 맛은, 내 자부심이기도 했다.
라면이 다 끓고, 입고 있던 가디건 소매를 끌어당겨 조심스레 그릇을 꺼내려는데… 그만, 그릇이 미끄러졌다.
뜨거운 국물이 오른손 손등에 그대로 쏟아졌다. 피부가 구운 오징어처럼 하얗게 말려 벗겨졌고, 손가락 뼈가 드러났다. 비명과 그릇이 깨지는 소리에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와 “소주에 담그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찬물로 열기를 빼야 했는데 잘못된 응급처치였다. 그래도 올라와서 내 상태를 살펴주신 아주머니께 감사했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탓하며 싸우고 있었다. 내가 다친 건데, 그 일로 두 분이 싸우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오빠가 내 옆에 앉았다.
어쩌다 다쳤냐고. 많이 아팠겠다고. 나도 데인 적 있었는데 진짜 아팠다고. 근데 이렇게 어린 니가 어떻게 이렇게 씩씩하게 잘 참고 있냐고. 자기 바지를 걷어 종아리쪽 데었던 곳을 보여주면서 흉 조금 지긴 했지만 별로 티 안나지 않냐며. 너도 금방 나을 거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 순간,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얀 피부에 꽃미남이었다.)
이후 6개월 동안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지냈다. 엄마는 너무 바빠 한 번도 병원에 같이 가지 못하셨다. 나는 혼자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이 진물에 엉겨붙은 거즈를 식염수로 불려가며 조심조심 떼어 내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피가 철철 나고 눈물이 났지만, 너무 아팠지만, 그냥 견뎠다.
6개월 후, 드디어 붕대를 풀고 집에 돌아온 날. 내 손등을 본 엄마는 깜짝 놀라며 물으셨다. “이렇게 심하게 데였던 거였니…?” 그 후로도 엄마는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고 하셨다. 두고두고 미안하다고.
엄마는 나에게 미안해 하셨고 나는 오빠에게 미안했다.
내가 데인 그날, 아빠는 오빠의 뺨을 때렸다. 오빠의 작은 얼굴에는 시뻘건 손자국이 남았고, 벽 쪽에 몰려 겁에 질린 채 서 있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건 오해였다. 오빠는 분명 억울했을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아빠는 성급하게 손부터 올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오빠는 아빠에게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내 오른손 손등의 화상 흉터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눈에 보이는 흉터보다 더 깊고 오래 남은 건, 그 날의 기억이다.
나는 그 기억을, 우리 가족 모두에게서 지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