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나비가 살 수 있는 세상에서
걷다보면 나비를 보게 되는 계절이다. 나는 나비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는데 중학생 시절 읽었던 만화책의 한 장면이다. 천계영님의 ‘오디션’.
이런 장면이 나온다. 천재로 구성된 밴드가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데 가사가 이런 내용이었다.
공룡이 나비를 찾아와 말한다. 너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너도 나처럼 멸종될 거야. 나비는 다급하게 날갯짓을 하며 말한다.
‘시간을 좀 더 시간을…’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는지 그 이후 나비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안도한다. 아직 나비가 살 수 있는 세상이구나.
민서네 반은 매주 한편씩 글을 써서 내는데 이번주 주제가 배추흰나비가 되어 자서전을 쓰는 거였다. 민서가 쓴 글을 보고 놀랐다.
알에서 태어난 애벌레가 허겁지겁 알껍질을 먹어치우고 자기가 붙어있는 잎사귀를 먹고 나서 ‘정말이지 온몸이 시원해 지는 것 같았습니다.’ 라는 부분에서. ‘번데기 안에서 나는 나비가 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라는 부분에서.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말리면 나는 이제 내가 원하던 하늘로 날아가는 겁니다!’ 라는 부분에서. ‘여름 햇살 아래에서 꿀을 찾으며 날아다니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 라는 부분에서.
2019년 여름, 중국 상해 우리가 살던 집 정원에서 나비를 유심히 관찰하던 5살 민서를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아이가 이제 나비가 되어 글을 쓸 수 있는 어엿한 초등 4학년이 되었다.
민서네 반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낸 글에 아무런 코멘트 없이 도장만 찍어주시는데 나는 그게 내심 섭섭하다. 이렇게 쓰는 지금 이 순간, 떠올랐는데 내가 써주면 되겠구나! ㅎㅎ 민서가 나의 열렬한 독자이듯, 나도 민서의 열렬한 독자여야겠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와 활자중독 수준으로 읽는 것을 좋아하는 딸의 케미가 너무 감사하다.
‘시간을 좀 더… 시간을…’
공룡 앞에서 다급히 날갯짓을 하던 그 나비처럼,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버텨내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서가 써 내려간 배추흰나비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오래전 나비를 떠올리던 중학생의 나를 만났고, 이제는 나비가 되어 제 이야기를 쓰는 아이를 만났다.
아직 나비가 살 수 있는 세상이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 곁에, 서로의 열렬한 독자로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