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육아휴직하기

육아와 일을 오가며 내가 마주한 제도의 얼굴

by 서담

스타트업은 육아휴직도 쉽지 않다.

예전 대기업에 다닐 땐 별로 신경쓸 것 없이 신청만 하면 육아휴직 급여가 계좌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서류를 8개나 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1.근로계약서

2.업무분장표

3.보험료 납부내역

4.출퇴근 확인부

5.인사기록카드

6.급여명세서

7.급여 입·출금 거래내역(은행직인 필)

8.휴대폰 발신통화내역(기지국정보 포함 / 통신사 문의)


고용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설명을 들었지만 납득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두 가지 서류는 빼주기로 했다.


첫째, 업무분장표.

“스타트업이라 전 직원이 다섯 명이고, 니 일 내 일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생략 가능하다”고 했다.


둘째, 출퇴근 확인부.

“출퇴근 기록은 따로 없고, 대표님이 눈으로 보신다”고 하니, “요즘은 작은 회사도 전산으로 기록하던데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도, 그 역시 생략되었다.


그렇게 남은 여섯 가지 서류는 다음과 같다.

1.근로계약서

2.교통카드 내역

3.급여명세서

4.급여 입·출금 거래내역 (은행 직인 필)

5.업무를 입증할 수 있는 사이트 주소

6.휴대폰 발신통화내역 (기지국정보 포함 / 통신사 문의)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출퇴근을 ‘교통카드 내역’과 ‘휴대폰 통화 기록’으로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2번과 6번은 서로 겹치는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카드사에 전화해 교통카드로 어느 역에서 타고 내렸는지 내역을 뽑고, 통신사에 방문해 발신 통화 내역과 기지국 정보를 제출하라고 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과거 대기업에 다닐 때, 육아휴직 신청이 얼마나 간단하고 체계적이었는지 떠올랐다.

신청만 하면 계좌에 급여가 들어왔던, 그 단순하고도 든든했던 기억.


물론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수당을 받으려면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을 했다는 사실보다, 일한 걸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주는 피로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워킹맘이다. 워커이자 맘.

그런데 두 정체성 모두 어디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느낌이다.


회사에서는 언제든 빠질 수 있는 사람이고,

아이들에게는 빈자리가 티나는 사람이며,

제도 속에서는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이 서류들이 결국 증명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어떤 하루를 살았는지보다,

그 하루를 ‘살았다고 증명하는 법’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작은 회사에서 일해도, 시스템이 없더라도,

사람을 먼저 신뢰해주는 제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월인데 벌써 날씨는 한여름처럼 덥다.

이곳저곳 쫓아다니며 서류를 정리한다.


다음 사람은, 나보다 조금 덜 힘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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