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서

by 서담

모두를 놀라게 한 끔찍한 사건에 달린 댓글을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정서가 있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한다.

범죄자의 삶에 ‘사연’을 붙이는 순간, 그것이 곧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은 조용히 아프다.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걸,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존재감을 상실한 사람은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


서사를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회 시스템이, 가정 환경이, 혹은 어떤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사람을 그렇게 몰아세웠을 가능성에 대해

사회는 책임을 다해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을 모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한다면,

제2, 제3의 사건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관과 정체성의 형성


나는 요즘 ‘세계관’과 ‘정체성’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조금은 추상적인 개념일 수 있지만,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아주 본질적인 뿌리다.

그 뿌리를 만들어주는 건 다양한 관계와 경험이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관계보다 알고리즘을 더 자주 마주한다.

자극적인 영상에 중독되고,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자본주의의 유혹에 이끌리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힘과 타인을 이해하는 시야를 잃어가고 있다.


교육 시스템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더 빠른 정답을 찾으라고, 더 정확한 답안을 쓰라고 강요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생각할 힘 자체를 잃어버리고 있다.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요즘 심리학도 점점 뇌과학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모든 문제를 호르몬으로, 약물로 조절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슬픔은 세로토닌 부족이고, 분노는 도파민 문제이며,

약을 먹으면 나아질 거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인간 존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마음에는 시간과 관계, 서사와 감정이 있다.

그 복잡함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일,

그것이 인간을 다시 ‘사람’으로 지켜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서사를 부여한다는 말은 때때로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서사를 부정한 채 괴물로만 규정하는 사회는

어쩌면 더 큰 폭력을 잉태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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