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오디오북)

귀로 떠나는 완주 여행

by 서담

오디오북은 보통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한다. 먼저 종이책이 출간되고, 그중 일부 작품을 성우나 AI가 읽어 오디오북으로 제작된다. 시점도 늦고 종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는 책을 경험할 수 있는 폭이 좁다.


여기에 생각이 머문 한 사람이 신선한 기획을 했다.

배우이자 ‘무제’라는 출판사의 대표인 박정민 님.


시각장애가 있는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책은, 오디오북이 먼저 제작되고 나중에 종이책이 출간되었다.


키링처럼 생긴 작은 책 모양을 스마트폰 뒤에 갖다 대자, ‘윌라’ 앱이 연결된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성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와 음향 효과가 어우러진 오디오북이 재생된다. 귀로 듣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풍경처럼 펼쳐진다. 드라마나 영화라기보다는, 배우의 눈빛과 호흡까지 느껴지는 연극 같았다.


나는 대개 집안일을 하며 유튜브를 듣는다.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게 맞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은 이 오디오북을 들으며 집안일을 했다. 문학작품을 감상하면서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밀고, 빨래를 개니… 정말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손열매와 함께 완주에 가서 외계인도 만나고, 간디도 만나고 있었다. 두릅을 데쳐 먹고 믹스커피를 탔다. (아직 안 읽으신, 혹은 안 들으신 분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으시겠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충청도식 유머와 해학이 대사 곳곳에 깔려 있어서 너무나 유쾌했다.


얼마 전 민서방을 만들어주며, 그 많은 책들을 나르다가 ‘이제는 종이책 구매를 자제하자’고 결심했던 내게, 이 자그마한 오디오북은 얼마나 반가운 아이템인가!


오디오북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아이템처럼 느껴졌다. 라디오에서 팟캐스트로 이어진 감성을 품은 채, 언젠가 내가 할머니가 되어 눈이 침침해졌을 때 듣게 될 책을 미리 만나는 듯했다.


매일 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가끔 너무 피곤하거나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날엔 ‘따뜻한 목소리 현준’이나 ‘오은영의 동화나라’ 같은 유튜브 채널의 동화를 들려주곤 한다. 그래서 이 오디오북도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 같이 듣고 싶어졌다. 장마철이나 무더운 여름날, 어디 나가기 힘든 날엔 수박 한 조각 꺼내 먹으며 함께 듣기에 딱일 것 같다.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발걸음을 떼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디오북과 함께한 완주 여행.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사이, 나는 홀로 조용히 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특별한 방식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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