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냄새 나는 책
어떻게 내 취향을 아셨을까.
중국 칭다오의 경향도서관 관장님과는 서로의 위챗 모멘트를 보며 좋아요를 간간히 눌러주고 댓글을 가끔씩 달아주던 사이였는데.
‘매우초록’은 그 분이 나의 어떤 모멘트에 댓글로 추천해 주신 책이었다. 당장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기까지 일년이 걸렸다. 작년 여름부터 올 여름까지.
책 여러권을 한꺼번에 읽는 습관 때문이기도 했고, 당장 읽어야 하는 책들에 밀려서 그랬다. 그런데 그게 참 다행이었다. 너무 더웠던 오늘 이 책을 꺼내 마저 읽으며 낄낄 거릴 수 있었다. 이 작가님 나하고 개그코드가 맞는데? 하며-
366쪽. 작가님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중간중간 들어있었다. 선명한 초록색의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길을 걷다 짙어진 나뭇잎 색을 보며 ‘매우 초록’ 이란 제목이 문득문득 생각났다.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고 고양이를 키우며 그림그리고 책쓰는 싱글인 작가님의 삶이 동경스러웠다. 나는 겁쟁이에 기계치라서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닌 듯 하나, 언젠가 한적한 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그림 그리고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귀농하고 싶다고 했을때, 그냥 회사원들이 회사 때려치우고 싶을 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삶이 조금 머리 속에 그려졌다. 어쩌면 재미있겠다고. 아이들 병원 문제만 아니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책이란 게 참 묘하다. 싱글 작가님이 쓴 책이 육아맘인 나에게 위로가 되다니. 공감이라는 건, 꼭 상황과 환경이 비슷할 때만 느껴지는 게 아니구나. 동질감과는 다른 거구나 생각했다.
좋았던 구절은,
잡초란 무엇인가?
네가 심지 않은 것.
짧은 구절인데 많은 생각을 했다. 머리 속에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정원을 가꾸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정성스레 가꾸는 것. 수고스럽지만 어느 순간 허리 펴고 바라보면 향기롭고 아기자기한 정원을 보며 부자가 된 듯 하다. 그런데 가끔 내가 심지 않은, 원치 않는 잡초 같은 것들이 자라난다. 빨리 뽑아야지 귀찮다고 미루면 자라서 정원을 다 차지해 버린다. 꽃과 나무가 먹어야할 양분을 빨아먹고 꽃과 나무를 밀어낸다.
상해에 두고 온 정원이 생각났다. 우리집 정원의 나무들에서 나뭇잎을 먹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정원에 날아다녔다. 그 애벌레가 그 나비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난 그렇게 믿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아무 준비도 없이 지인들께 부탁해 포장 이사로 그 집을 떠났다. 빈 집의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우리가족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정성스럽게 가꿨던 정원에 잡초가 무성했다.
내 머리 속에 잡초가 무성할 때 다시 읽고 싶다. 이 책은 잔디 깍은 후 유독 진하게 느껴지는 풀냄새 같은 책이라고 느꼈다. 여름밤 시원한 맥주와도 어울리고 카페 창가자리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와도 어울린다.
이 책을 읽으며 몇몇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그 친구도 이 책 좋아할 거 같은데? 하며. 그리고 민서도 좋아할 것 같다. 언젠가 꺼내 읽으라고 책장에 잘 꽂아 둬야겠다.